한 남성이 "교도소에서 뭘 먹었습니까?"라고 묻자, 죄수복을 입은 '박사방' 주범 조주빈이 "오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치즈돈가스가 나왔습니다. 이러니 제가 살을 뺄 수가 없죠"라고 너스레를 떤다.
계곡 살인 사건의 이은해는 같은 질문에 "된장국에 돼지 갈비찜이 나왔는데 식재료가 중국산이라 맛없다"고 불평한다.
이 황당한 문답은 실제가 아닌 인공지능(AI)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이다.
2일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강호순을 비롯해 오원춘, 정유정 등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죄수복 차림으로 밥을 먹거나 교도소를 활보하는 AI 영상이 '교도소 근황', '교도소 식사' 등의 제목으로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
신상이 공개된 강력 범죄자의 얼굴과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AI 범죄자'들은 카메라를 향해 '씩' 웃기까지 한다. 일부 영상은 조회수가 260만회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은해의 사진에 "계곡 갈래?"라는 문구를 합성한 조롱성 밈이 유행한 바 있다.
이은해의 '계곡 살인 사건'은 이씨가 공범인 내연남 조현수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수영을 못하는 남편을 4m 높이 바위에서 계곡물로 뛰어들게 해 숨지게 했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AI 기술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범죄를 오락으로 소비하는 행태는 갈수록 진화 중이다.
틱톡 라이트 등에 이은해나 정유정이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영상이 퍼지고, 올 초 '강북 모텔 연쇄살인' 직후에는 '청주 여자 교도소 5인방'이라며 여성 흉악범들을 한데 모은 AI 화보까지 등장했다.
사진 속에는 1∼5번까지 차례로 이은해 및 과외 앱으로 알게 된 또래 여성을 살해·유기한 정유정, 전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 약물이 든 음료로 남성 2명을 살해한 김소영 , 남편과 내연남을 약물로 살해한 뒤 사고사로 위장해 보험금을 탄 '엄 여인 사건'의 엄인숙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문제는 대중이 이를 흥미성 콘텐츠로 소비하는 사이, 실제 범죄 피해자들은 심각한 '2차 가해'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피해자들은 이미 공개된 가해자 사진만으로도 트라우마를 느끼는 데, AI는 더 현실 같은 데다 범죄를 오락성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있다"며 "피해자에게 중대한 문제가 사소한 장난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초상권이나 명예를 훼손당하는 주체가 범죄자 본인이라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하고도 고소하기 어렵다고 한다.
뉴미디어뿐 아니라 기성 매체마저 AI를 활용한 범죄 재연으로 논란을 부추긴 바 있다.
2024년 LG U+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는 AI로 피의자 목소리를 복원해 조서를 읽게 했다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범죄자 목소리 재현이 소름 끼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범죄자를 희화화, 우상화하거나 범죄를 오락화하는 AI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마땅치 않다.
경찰 관계자는 "명확한 처벌 규정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가 플랫폼 사업자에게 삭제나 접속차단 같은 조치를 요청하는 정도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 측에서 명예훼손이나 초상권 침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며 "AI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활용할지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시급히 만들어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yun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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