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내가 나오면 TV를 끄고 결과만 확인한다고 하더라. 얼마나 마음을 졸이겠나."
3할5푼(20타수 7안타)의 괴물 같은 대타 타율을 지닌 남자가 있다.
KT 위즈 이정훈이 그 주인공이다. 리그 평균이 2할4푼1리, 10타석 이상 대타 출전 횟수 2~5위(김인태 고종욱 유강남 김지찬)의 합산 타율이 1할9푼임을 감안하면, 이정훈의 경기 후반 존재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7일 수원 한화 이글스전에서도 또한번 이정훈의 진가가 빛났다.
7-7 동점 상황에서 KT는 9회말 선두타자 장성우가 출루했고, 희생번트와 오윤석의 안타로 1사 1,3루가 됐다.
타석에는 배정대. 통산 끝내기 9회(홈런 2회, 안타 6회, 희생플라이 1회)에 빛나는 '끝내주는 남자'다. 하지만 이강철 KT 감독은 앞선 경기에서의 컨디션을 고려했을 때 대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정훈은 2루수 키를 넘기는 깔끔한 끝내기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2017년 2차 10라운드(전체 94번) 출신인 이정훈에겐 프로 데뷔 10년만의 첫 끝내기였다. 끝내기 직후 동료들에 둘러싸여 뜨겁게 포효한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너무 기분좋다"며 활짝 웃었다.
올해 '98억 듀오' 김현수-최원준과 외국인 선수 힐리어드가 보강되면서 KT 선수단에 큰 변화가 있었다. 외야는 통째로 주전 라인업이 바뀐 모양새. 유준규 등 신예들도 급부상했지만, '대타 이정훈'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결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발로 출전하는 선수들은 3타석에 1번, 5타석에 2번만 출루해도 좋은 타자로 인정받는다. 반면 대타는 클러치 상황에서의 그 한 타석 뿐이다.
때문에 이정훈은 경기 내내 흐름을 주시하다 대타가 필요할 것 같으면 실내 연습장에서 타격 연습을 하며 타이밍을 맞춰놓는다고. 그는 "감독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나갈 수 있게 준비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끝내기에 대해서는 "사이드암 투수(한화 강재민)이라 자신감있게 쳤다"면서 "KT 온뒤론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하는데, 그게 기를 모으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그런 이정훈을 매일매일 간절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이정훈의 아내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가족과는 리듬이 사뭇 다르다. 응원하는 선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들과 달리, 이정훈의 아내는 남편이 경기에 나오는 순간 TV를 끈다.
'대타' 이정훈의 출전은 곧 클러치 상황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남편에게 주어지는 단 한번의 기회. 아내가 지켜보기엔 너무 벅찬 무게다. 차마 보지 못하고, 결과만 확인한다. 나중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제서야 다시 녹화를 한다고.
"아내는 집에 온 내 표정만 보면 결과를 안다고 하더라. '참 순박하다. 얼굴에 다 티가 난다'면서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 때론 '오늘 못쳤으니 내일부턴 안할거야?' 그렇게 강하게 말할 때도 있다. 그 마음씀이 참 고맙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해서 아내를 더 웃게 해주고 싶다."
수원=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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