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잘생기고 쭉쭉 뻗은 나무들은 먼저 눈에 띈다. 누구나 탐을 낸다. 어느 집의 서까래, 대들보가 된다. 굽은 나무는 소리없이 강하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숲을 지켜낸다.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그리고 어느날 뿌리깊은 거목이 된다.
올시즌 성남 일화는 자타공인 초호화군단이다. 'K-리그 최고의 스타'인 윤빛가람,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한상운 '세르비아 용병 공격수' 요반치치… 모셔오는 데만 수십억을 썼다. 기존의 브라질 출신 골잡이 에벨찡요와 에벨톤도 공격라인에서 빛난다. 올림픽대표팀과 A대표팀을 오가며 온-오프라인에서 소녀팬의 비명을 몰고 다니는 '성남 키즈' 홍 철도 있다.
하지만 올 시즌 '위기의 성남'을 지키는 건 '빛좋은'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다. 야심차게 '신공(신나게 공격)'을 표방했건만, 성남의 시즌 초반 성적은 영 신통치 않다. K-리그 5경기에서 1승1무3패, 16개 구단 가운데 14위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G조 3경기에서도 3무로 아직 승리를 신고하지 못했다. 믿었던 한상운은 아직 K-리그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원톱' 요반치치는 1골에 그쳤다. 그나마 위기의 성남을 지키는 힘은 '프로 2년차 살림꾼' 박진포와 전성찬이다.
3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개막전 전북현대와 성남일화의 경기가 열렸다. 전북 루이스와 성남 박진포가 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전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2.3.3
3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 3차전 센트럴코스트전에서 박진포-전성찬의 진가가 빛났다. 한골을 허용한 직후인 후반 13분 신태용 감독이 부진한 한상운을 빼고 전성찬을 투입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자마자 작전이 개시됐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문전으로 쇄도했다. 박진포의 크로스가 전성찬의 머리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전성찬의 헤딩패스는 에벨톤의 날카로운 발끝에 걸렸다. 1대1, 짜릿한 동점골이 터졌다. 박진포-전성찬-에벨톤 '원조 신공 라인'이었다.
오른쪽 풀백 박진포는 올 시즌 공수에서 눈부신 파이팅을 보여주고 있다. '산소탱크'인 동시에 '진공청소기'다. 자타공인 '체력왕'답게 가장 많이 뛰고, 가장 많이 부딪친다. 공격에선 강력한 '택배 크로스'로 무장했다. 전북과의 개막전에서 에벨톤의 헤딩골을 도왔고, 텐진 테다와의 조별리그에선 한상운의 헤딩골을 도왔다. 3일 센트럴코스트 원정전에서도 '택배 크로스'로 무승부를 이끌었다.
'박진포의 입단 동기' 전성찬은 '난 놈' 신태용 성남 감독이 올 시즌 '날 놈'으로 지목한 2년차 미드필더다. 기술과 체력, 센스를 두루 갖췄다. 전성찬은 지난해 선수난에 허덕였던 성남에서 '1년차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24경기에서 3골2도움을 기록했다. 올시즌 강력한 경쟁자들을 맞았다. 윤빛가람 김성준 등 스타급 미드필더들이 한꺼번에 영입되면서 팀내 주전 경쟁이 치열했다. '특급 이적생' 윤빛가람이 줄곧 선발로 나서면서 전성찬은 후반 조커로 나섰다. "쟁쟁한 경쟁자들이다. 나보다 어리지만 프로 연차도 높고, 경험도 많고…, 내가 더 잘하려고 하기보다 팀을 위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었다."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단 10분을 뛰어도 좋다"고 했었다. 센트럴코스트전 전성찬은 투입되자마자 작심한 듯 문전 쇄도했다. 상대의 허를 찔렀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남몰래 속끓이는 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오래 된 선산을 지키는 건 '화려하고 잘생긴 나무'가 아니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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