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태국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 '제2회 박지성 자선경기'를 마치고 녹초가 된 선수단 중 진한 작별의 악수를 나누는 선수들이 있었다. 이청용(볼턴)과 윤유현(이상 24·태국 TTM치앙마이)이었다. 오작교는 '박지성 자선경기'였다. 두명 모두 '박지성과 프렌즈' 소속 선수들이었다. 22일 오후 태국에 도착한 이청용은 원유현과 만났다. 6년 만이었다. 어색함이 흘렀지만, 이청용은 한 번에 원유현을 알아차렸다. "내가 형을 어떻게 잊어…." 원유현은 빠른 1988년생이다. 이청용보다 학년이 한해 빠르다. 미디어컨퍼런스를 마친 둘은 호텔로 돌아와 그동안 쌓아뒀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얘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둘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17세까지 연령별 청소년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이청용과 원유현은 각각 주전 미드필더와 골키퍼로 활약했다. 한국 축구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유망주들이었다. 정반대의 성격에 끌렸다. 내성적이었던 이청용에 비해 윤유현은 외향적이었다. 한 때 동대문 의류상가 옆에 설치된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춰 부상으로 그릇을 받아 이청용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던 원유현이었다. 그러나 2006년 프로가 된 이후 운명이 엇갈렸다. 이청용은 한국 축구의 '히트상품'이 됐다. 기성용과 함께 입단 첫 해부터 주전으로 도약했다. 올림픽대표 뿐만 아니라 A대표팀에도 발탁됐다. 2009년 7월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7호로 승승장구했다. 반면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었던 원유현은 시련을 겼었다. 부동의 주전 골키퍼 김영광과 김승규에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원유현의 축구인생이 다시 꽃을 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태국 TTM FC 피칫 지휘봉을 잡은 배명호 감독을 따라 낯선 태국으로 건너왔다. 원유현은 "청소년대표 때 줄곧 주전으로 활약하다 프로에서 경기를 뛰지 못해 속상했다. 오직 경기를 뛰고 싶어 선택한 길이다. 다른 K-리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주전이 아니었다. 주전으로 그라운드에 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고의 유망주에서 무명으로 추락한 자신의 모습에 속상한 탓이었다. 그래도 바람을 이뤘다. 지난해 리그 36경기와 컵대회를 포함해 38경기를 소화했다. 태국리그에서 좋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시즌도 10경기에서 최저실점(5골)을 기록하고 있다. 원유현은 "여기서 아무리 잘해도 한국 팬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 그러나 어디서든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후보선수로 한참 있어봤지만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곱상한 외모를 가진 원유현은 1년 반 만에 태국에서 '인기스타' 반열에 등극했다. 엄청나게 많은 태국 여성 팬들이 생겼다. 페이스북에는 900여명이 친구로 등록되어 있다. '자선경기 기간'에도 여성 팬들의 사인과 사진촬영 공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원유현은 "태국의 축구 열기는 한국 못지 않다. 오히려 더 열광적이다. 선수들이 경기를 뛰었을 때 울고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하다. 이길 때나 질때나 팬들의 변함없는 격려가 힘이된다"고 덧붙였다.
태국에만 머무를 수 없다. 원유현은 K-리그 복귀를 꿈꾸고 있다. "K-리그로 돌아가고 싶은 꿈이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뤄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국가대표는 나이가 들어도 버릴 수 없는 꿈이다. 그는 "내 축구인생에서 태극마크도 달아보고 싶다. 열심히 하다보면 반드시 꿈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원유현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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