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시와 레이솔의 자책골로 울산 현대가 2-1로 근소하게 앞서던 후반 42분이었다. 왼쪽 측면에서 울산 강진욱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1m96의 거구 김신욱은 공을 뒤로 흘렸다. 이근호는 가슴트래핑 이후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순간 울산월드컵경기장은 태극 물결로 넘실거렸다.
울산이 K-리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냈다. 30일 가시와와의 2012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3대2로 승리했다. 후반 9분 김신욱의 헤딩 선제골과 후반 25분 상대 자책골로 앞선 뒤 후반 42분 이근호의 쐐기골로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울산은 다음달 14일 추첨을 통해 8강 1차전(9월 19일)과 2차전(10월 2일 또는 3일)을 치른다.
울산은 희망이었다. K-리그에 마지막 남은 한 줄기의 빛이었다. 전북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는 조별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울산과 함께 16강 무대를 밟은 성남 일화는 29일 분요드코르(우즈벡)에 석패해 8강 진출이 좌절됐다. 울산에게 모든 관심이 쏠렸다. 울산마저 떨어질 경우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K-리그 4룡이 모두 고배를 마시게 되는 꼴이었다. 대참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울산이 재앙을 막아냈다. 울산의 챔피언스리그 8강행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K-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병행으로 인한 살인적 일정을 이겨낸 값진 결과다. 울산은 2~3일에 한 번씩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3월부터 7경기를 치렀다. 4월은 더 혹독했다. 14일간 집을 비웠다. 광주-제주-호주 브리즈번-인천 등을 오가며 7경기 중 4경기 연속 원정을 떠나야했다. 5월에는 무려 8경기였다. K-리그 4경기와 챔피언스리그 3경기에다 FA컵 32강전까지 치렀다. 숨막히는 일정을 보내면서 체력은 바닥났다. 이때 울산 선수들에게 '피로회복제'가 됐던 것은 승리였다. 울산은 3월 31일부터 5월 16일까지 벌어진 11경기에서 7승4무를 기록, 단 한 경기도 패하지 않았다.
더블 스쿼드의 부재도 넘어섰다. 내년 승강제를 대비한 스플릿시스템으로 늘어난 K-리그 일정과 챔피언스리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주전과 비주전의 경기력차가 적어야 한다. 때문에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기업구단이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칫 K-리그 팀들이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챔피언스리그 티켓 수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은 기업구단임에도 스쿼드가 부실했다. 올시즌을 앞두고 이근호와 김승용 등 일본 J-리거, 스페인 레알 마요르카 출신 아키를 영입했지만 전북, 성남, 포항에 비해 선수간 전력차가 컸다. 경고 관리와 부상을 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주전들이 계속해서 경기를 뛸 수밖에 없었다. 강한 정신력 하나로 근근히 버텼다.
지친 선수들에게 자극제는 두 가지 자존심 지키기였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항상 태극마크를 강조한다. 김 감독은 "울산이기 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팀이다. 반드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이날 역시 경기 전 미팅에서 K-리그의 유일한 자존심에 대해 역설했다. 또 한-일전에 대한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김 감독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한·-일전의 역사적 의미가 예전보다 옅어졌다"고 말한다. 세대차이는 인정하지만, 여전히 일본 팀과의 맞대결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한-일 클럽 대항전 승리에 대한 염원에 울산 팬들도 적극 동참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1만4341명의 관중들은 구단이 나눠준 2000개의 태극기를 흔들며 울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울산의 한 서포터스는 사비를 털어 40만원의 걸개를 제작하기도 했다. 태극기 문양의 기본 바탕에 울산 구단 엠블럼이 크게 자리잡았다. 특히 K-리그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의미에서 'You Are Not Alone'(너는 혼자가 아니야)란 문구도 삽입했다. 나머지 15개 K-리그 구단들의 엠블럼도 넣어 모두가 울산을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울산=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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