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맨' 정현욱과 '선발' 정현욱은 어떻게 달랐을까.
삼성 류중일 감독은 8일 인천 SK전에 정현욱을 선발로 내보냈다. 정현욱은 삼성 불펜의 핵심 멤버. 2008년 7월20일 대구 한화전 이후 4년 가까이 선발로 등판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파격이었다.
류 감독은 정현욱의 선발 등판에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일단은 정현욱의 분위기 전환. 그동안 항상 박빙의 상황에서 긴장을 하고 던져야 했던 정현욱에게 선발로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올시즌 부진한 정현욱이 선발로 오래 던지면서 자신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기를 바랐다.
류 감독은 "스피드를 보면 150㎞를 찍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지난해보다는 좋지 않다. 잘 맞아 나가지 않나. 공끝이나 제구 등에서 문제가 있는데 스스로 많이 던져보면서 구위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라고 했다.
정현욱은 140㎞ 중후반의 빠른 직구와 커브, 포크볼로 타자와 상대를 하는데 주로 묵직한 직구로 승부를 한다. 중간으로 나올 땐 80∼90%가 직구다. 투구수가 30개 이상 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강하게 공을 던진다.
그러나 8일 정현욱은 직구의 비율을 크게 떨어뜨렸다. 4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투구수가 총 93개였는데 그중 48개가 직구였다. 직구비율이 51.6%. 커브가 24개(25.8%), 포크볼이 21개(22.6%)였다. 직구 최고구속은 149㎞, 최저 143㎞였고 평균 구속은 146㎞였다. 아무래도 오래 던져야 하는 선발이다 보니 힘을 안배해야 했다. 류 감독이 생각한 투구수는 적게는 80개에서 많게는 100까지였다. 마지막 선발등판이었던 2008년 93개를 던진 이후 50개 이상 던져본 적이 없던 정현욱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직구로 주로 카운트를 잡았는데 보통 다른 투수들이 유인구로 쓰는 포크볼도 종종 카운트를 잡는 역할을 했다. 직구처럼 오다가 스트라이크존을 관통하며 떨어져 타자들을 속게 한 것. 대신 커브를 낮게 떨어뜨리면서 상대타자를 유인하는데 썼다.
아무래도 선발 정현욱은 상대에겐 익숙지 않다. 지난 6일 두산의 불펜투수 노경은이 선발로 나왔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SK 타자들은 이날도 정현욱을 공략하는데 애를 먹었다. 중간일 때의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돼 사실상 처음보는 투수와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예상대로 스태미너였다. 1-0으로 앞선 5회말 정현욱은 정진기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2아웃을 잡을 때 79개의 공을 던졌다. 이후부터 힘이 떨어졌다. 정근우와 임 훈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고, 3번 최 정과는 풀카운트 승부를 했지만 승부구로 던진 8구째 직구가 낮게 제구돼 볼이 되며 볼넷으로 만루를 허용. 결국 류 감독은 정현욱을 내리고 이우선을 올렸다. 이우선이 폭투를 범하고 홈런을 허용하는 바람에 정현욱이 내준 주자가 모두 홈을 밟았다. 정현욱의 4년만의 선발 기록은 4⅔이닝 6안타 3볼넷, 3실점, 탈삼진 5개, 그리고 패전이었다.
아쉬웠지만 불펜으로 돌아갈 정현욱에겐 소득이 있는 '선발 외출'이었다.
인천=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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