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23·세레소 오사카)의 별명은 '포스트 박지성'이다. 1m78에 73㎏의 호리호리한 체격. 아직은 여드름이 완연한 피부에 수줍어하는듯한 표정이 박지성과 닮았다. 그 나이 때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기에 왼쪽과 오른쪽 측면 공격수는 물론이고 섀도 스트라이커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 능력, 그 누구보다 많이 뛰는 플레이까지 박지성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박지성마저도 자신의 후계자로 김보경을 지목했을 정도다.
하지만 '포스트 박지성'이라는 별명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실제로 김보경은 A대표팀의 주역이 아니었다. 박주영(28·아스널)과 이청용(24·볼턴) 등 걸출한 선배들에 늘상 가렸다. 김보경의 주무대 역시 A대표팀이 아닌 올림픽대표팀이다. '그 나이 때 박지성보다 낫다'라는 평가 뒤에는 '박지성의 플레이와 닮아있을 뿐 아직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숨어있다.
정답은 골이었다. 김보경은 A매치 13경기에 나섰지만 골이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면 골이 필요했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12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 운명의 그날을 이틀 앞둔 10일 김보경은 '골'을 말했다. 그는 "A대표팀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골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자신있었다. 올 시즌 J-리그에서 7골을 넣었다. 득점랭킹 2위다. 10일 카타르전에서는 2개의 어시스트로 영점을 조절했다. 그림같은 '칩패스'로 이근호(28·울산)의 헤딩골을 이끌었다. 후반 들어서는 날카로운 킥으로 곽태휘의 절묘한 헤딩골을 도왔다. 평소 과묵하고 내성적인 김보경이 공개 석상에서 골을 말했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레바논전은 결실의 무대였다. 오른쪽 측면에 선 김보경은 최강희호 공격의 구세주였다. 적재적소로 향하는 공간 패스와 측면 드리블 돌파, 뒷공간 침투로 레바논의 수비진을 흔들었다. 날카로운 중거리슈팅도 곁들였다.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전반 30분 이근호의 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골문을 갈랐다. 14번째 A매치만에 나온 데뷔골이었다.
한번 불붙은 상승세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김보경은 종횡무진 레바논 진영을 휘저었다. 최전방과 중원을 넘나들었다. 김보경의 움직임은 A대표팀의 전형을 바꿀 정도였다. 김보경이 중앙으로 내려가면 이근호가 오른쪽 측면으로 향했다. 김보경이 왼쪽으로 가면 이근호와 염기훈(29·경찰청)이 자리를 맞바꾸었다. 박지성이 A대표팀에서 뛰던 시기 선보였던 '박지성 시프트'였다. 이날은 '김보경 시프트'였다. 후반 3분 김보경은 레바논의 추격의지를 꺾는 추가골을 넣었다. 역습 상황에서 스루패스를 받아 단번에 최전방까지 올라가 골을 성공시켰다.
이제 더 이상 김보경을 '포스트 박지성'의 틀안에 가두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부터는 '포스트 박지성'이 아닌 새로운 김보경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최강희호의 공격을 이끈 '대한민국 7번' 김보경이었다.
고양=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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