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확실한 한방을 터뜨려줄 수 있는 스트라이커,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 리더십있는 센터백 등은 강팀을 위한 필수요건으로 여겨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스페인은 '전통적인 9번(스트라이커의 대표 등번호)'없이도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미드필더 다니엘레 데 로시(AS로마)를 센터백으로 기용하고도 탄탄한 수비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한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좋은 골키퍼의 보유다.
유로2012 4강에 진출한 팀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 포르투갈의 후이 파트리시우(스포르팅그) 등 수준급의 골키퍼를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든든한 골문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축구를 펼칠 수 있었다. 스페인은 카시야스의 동물적인 선방으로 이번 대회 최소실점(1실점) 중이며, 이탈리아는 부폰의 노련미를 앞세워 잉글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4강행 막차를 탔다. 노이어도 중요한 순간마다 특유의 천재성을 발휘 중이며, 포르투갈의 파트리시우도 최후의 보루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다.
대회 개막 전 최고의 골키퍼 '빅3'로 평가받았던 노이어, 카시야스, 부폰이 속한 세 나라가 모두 4강에 진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대축구의 기본은 공수 간격을 극단적으로 좁히는 컴팩트 축구다. 플랫(FLAT)형태의 수비진이 미드필드진까지 올라가며 공격을 지원하게 된다. 이 때 윙백과 센터백의 순간적인 공격가담이 용이해지지만, 골키퍼와 수비 사이의 공간이 넓어지는 단점이 생긴다. 이 뒷공간에 대한 커버는 바로 골키퍼의 몫이다. 현대축구에서 골키퍼를 단순히 '손'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이어, 카시야스, 부폰, 파트리시우 모두 손뿐만 아니라 발도 잘 쓰는 골키퍼 들이다.
골키퍼에 필요한 중요한 역할이 또 있다. 공격 전개력이다. 현대축구에서 골키퍼는 공격의 시작이다. 패싱축구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경우 아예 이스마엘 발데스 골키퍼에게 롱패스를 금지시켰을 정도다. 위험한 순간에도 숏패스를 하는 발데스 골키퍼는 가끔 아찔한 장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바르셀로나 특유의 축구를 밑에서부터 가속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빠른 공수전환이 생명인 현대축구에서 골킥은 그 자체로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노이어, 부폰의 롱킥은 정확도 면에서 정평이 나 있으며, 카시야스, 파트리시우는 안정적인 패스를 선보이고 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승부가 결정나는 토너먼트에서 안정된 수비는 필수다. 그 수비의 한가운데서 마지막을 책임져야 하는 골키퍼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강팀의 조건을 보유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4강 진출은 그래서 당연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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