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팀을 맡은지 10일도 되지 않은 K-리그 초보 감독이 느끼는 스플릿시스템의 압박감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3일 전남의 지휘봉을 잡은 하석주 감독이 흥미로운 답변을 내놨다. 아직 두 경기 밖에 치르지 않아 피부로 느끼는 스플릿시스템의 체감온도는 높지 않다. 최하위를 헤매고 있는 팀 성적 때문에 강등권 탈출에만 전력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동료 감독들에게서 스플릿시스템이 주는 스트레스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22일 전남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K-리그 29라운드 서울전. 경기전 만난 하 감독은 상대팀인 최용수 감독 얘기를 먼저 꺼냈다. "감독으로 부임했다고 제일 먼저 난도 보내주고 전화도 해줬다. K-리그에는 예전에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감독들이 많다. 용수를 비롯해 황선홍 포항 감독, 유상철 대전 감독들이 많은데 연락을 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전에 봤던 얼굴들이 아니라는 것. 하 감독은 "오랜만에 얼굴들을 보는데 다들 너무 늙었고 머리도 빠지고 있더라. 정말 스플릿시스템이 감독들을 죽이고 있다"며 웃었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사람의 피를 말리나 보다. 하 감독이 전남에서 2년간 수석코치로 있던 시절에 느꼈던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르단다. 최근 광양 클럽하우스의 감독실에 갔는데 하 감독은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정해성 감독님이 몸이 많이 안좋으셨던 것 같다. 감독실에 아직도 약병들이 있더라. 감독님들 대부분이 수면제나 위장약을 달고 사는데 나도 조만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4개월 뒤 내 모습일 수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최용수 FC 서울 감독에게 물었다. 서울은 선두권을 달리고 있어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후배 감독들이 너무 늙은 것 같다'는 하 감독의 말을 전하자 웃더니 "사람 긴장하게 만드는 제도다. 매 경기가 긴장의 연속이다. 선두권 팀이라고 스트레스가 적은게 아니다. K-리그 지도자들이 모두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감독도 최근 약을 먹게 됐다고 한다. "다른 약은 안 먹는데 아토피가 최근에 생겼다. 성인에게도 아토피가 오는건가?"라고 되물었다. FC 서울 구단 관계자가 "스트레스가 많으면 생길 수 있다"고 답하자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루에 5~6개비 피던 담배를 최근엔 한 갑이상 피게 된다는 그의 말에서 스트레스의 강도가 느껴졌다. 그러나 스플릿시스템으로 K-리그가 더 재미있어질 수 있다면 충분히 즐겁게 받아들일만한 스트레스라는 것이 감독들의 공통된 의견. 최 감독은 "스플릿시스템이 팬들에게는 상당히 재미있는 시스템일 것이다. 매 경기를 모두 결승처럼 치르니 팬들도 즐겁고 K-리그도 발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올시즌 K-리그는 30라운드의 정규리그를 끝낸 뒤 상위그룹(1~8위)과 하위그룹(9~16위)으로 나뉘어 14경기를 더 치른다. 앞선 30경기의 승점은 연계되며 별도의 플레이오프 없이 우승팀이 가려진다. 최하위 두 팀은 하위리그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는다. 첫 번째 운명이 갈리는 30경기까지 남은 경기는 29라운드를 포함해 2경기. 감독들의 스트레스가 최절정에 이를 시기다.
5개 구장에서 열린 이날 K-리그에서 10개팀의 감독들은 각각 다른 스트레스 강도를 겪었을 것 같다. 그나마 최용수 감독과 김호곤 울산 감독, 모아시르 대구 감독, 최진한 경남 감독, 황선홍 포항 감독은 발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서울은 전남 원정경기에서 3대0 완승을 거뒀다. 서울(승점 61)은 이날 경기가 없던 전북(승점58)을 누르고 선두를 재탈환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8강 진입 티켓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구와 경남은 모두 승리를 따내며 최종 승부를 30라운드로 돌렸다. 대구(승점 39)는 8위에, 경남(승점 37)은 9위에 랭크됐다. 포항은 광주를 1대0으로 꺾고 5위(승점 47)로 한 단계 순위를 끌어 올렸다. 울산은 상주를 4대3으로 제압했다.
광양=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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