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동창회에서 뭉친 왕년의 고교 절친 6인조 성시원(정은지), 윤윤제(서인국), 모유정(신소율), 도학찬(은지원), 강준희(호야), 방성재(이시언). 세월이 흘러 어느덧 번듯한 사회인이 되었고, 각자의 곁에는 사랑하는 배우자 혹은 연인도 있고, 심지어 이젠 부모가 된 이들도 있지만 함께 모이면 어쩜 이렇게도 열여덟 그때 그대로인지!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지만 함께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혈 10대 청소년으로 되돌아가는, 마치 현재가 아닌 추억의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이 6명의 청춘들을 보고 웃고 또 훌쩍거리기도 할 수 있었던 건 '공감에서 오는 재미'였다.
솔직히 처음에 <응답하라 1997>의 포스터 메인 카피 -열여덟, 오빠들은 내 삶의 전부였다- 와 예고를 봤을 때에는 왠지 겁나 오글거릴 것 같았다. 뭔가 세련되지 않아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별로 꺼내보고 싶지 않은 옛날 옛적의 촌스러운 사진을 꺼내 보는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달까. 그래서 주변의 열광적인 반응과 폭풍권유가 있기 전까지는 시작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편견을 가졌던 것이 좀 많이 미안해질 정도로 이 드라마 속의 찰진 경상도 사투리, 파릇파릇하니 매력 만점이던 배우들, 그리고 아주 촘촘하니 깨알 같던 극 구성과 센스 만발 BGM과 그 시대 소품들 덕분에 뒤늦게나마 열렬히 나도 '응답앓이'에 동참할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장난 아닌 드라마였다. 어떻게 보면 좀 영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2030 세대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면서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갔을 때 부딪힐 수 없는 무거운 문제들은 -입시 스트레스의 어두운 이면, 학교폭력, IMF 등- 이 6명의 이야기들로 밀당하면서 잘 피해간 느낌. 이제 서른을 넘기고 있는 시원이와 윤제,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막상 나이를 들고 보니, 해를 넘기면 넘길수록 각자 제 코가 석자인지라 친구들끼리 그렇게 뭉치기도 너무 어려워서 말이다.
그래도 소꿉친구였던 시원이와 윤제의 티격태격 꽁냥질과 풋풋하니 설?? 로맨스,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던 본격 성시원 남편 추리 떡밥, H.O.T.와 젝스키스를 아는 세대라면 빵 터질 수 밖에 없는 그때 그 추억들까지. -아아 추억의 입금증과 흰 우비란!- 드라마 보면서 주변 지인들과 옛날 생각나지 않냐며 광대가 승천할 정도로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응답하라 1997>이 더욱 더 재미있었던 건 드라마의 장면 하나하나가, 대사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릴 정도로 공감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그 90년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던 사람에게만 어필했던 건 아니다. 아마 언제 어떻게 <응답하라 1997>을 보게 되더라도,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있다면 이 드라마가 찡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때는 너무 커 보였던 입시의 벽과 기타 등등 말 못할 다른 스트레스들 속에서도 그저 마냥 즐겁게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던 이유, 주6일의 등굣길이 지금의 출근길보다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울 수 있던 이유는 어제 만났지만 오늘 만나도 한 없이 반갑고 신나는, 항상 내 옆자리나 옆 분단에 앉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라마 보면서 친구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그때 그 친구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밀려 와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단순히 먹먹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을 지금 이 기분은 단순히 <응답하라 1997>이 끝나서, 혹은 드라마를 보면서 친구들 생각이 나서 센치해져서가 아니라, 마지막 윤제의 내레이션이 가슴을 쿡 찔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다시는 무모하리만치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걸 절절하게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윤제처럼 나도 나지막이 외쳐보고 싶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토오루 객원기자, 暎芽 (http://jolacand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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