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감독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스포트라이트와 억대의 두둑한 연봉이 보장되는 '빛나는 자리'지만, 스트레스가 숙명처럼 따라 붙는 '독이 든 성배'다.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에 따라 롱런의 길이 이어진다. K-리그 감독들은 음주, 흡연, 등산, 수다, 마사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박경훈 감독도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에는 성적 부진으로 오른 고막이 터지기도 했다. 박 감독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영화감상이다.
박 감독은 술, 담배를 즐겨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할때면 가끔 술 한잔, 담배 한모금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건강 때문에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한다. 멀리 있는 만큼 친구들과의 만남도 쉽지 않다. 해외리그 경기도 자주 보지만, 축구로 얻은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기도 그렇다.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란게 한정돼 있다. 제주의 숙소 근처에는 대형마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주택과 음식점이 다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영화감상이 답이었다.
박 감독은 경기 전날 주로 영화관을 찾는다. 경기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선택한다. 마침 제주월드컵경기장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인만큼 시작 10분전에 도착해도 영화 티켓을 끊는데 무리가 없다. 동행자는 주로 코치들이다. 제주도 토박이가 없어 코치들도 박 감독과 비슷한 처지다. 함께 영화를 보면서 다음날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낸다. 영화를 보고 다 함께 차를 한잔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한다.
그래서인지 박 감독은 최신영화 대부분을 섭렵했다. 요즘에는 경기가 짧은 간격 안에 이어지며 극장을 예전만큼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웬만한 영화는 다 봤다. 보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만한게 없다는게 박 감독의 생각이다. 경기가 유난히 안풀리고, 슬럼프가 이어질때는 오후 훈련을 취소하고 선수단을 이끌고 단체관람을 할 때도 있다. 박 감독은 "축구만 생각하고 싶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 그때 영화를 보고 머리를 정화시킨다. 영화 관람 뒤 코치들끼리 바깥 바람을 쐬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극장이 숙소에서 가까운게 참 다행이다"며 웃었다.
제주는 3일 경남을 잡고 2연승을 달렸다. 산토스도 부상 복귀 후 처음으로 골맛을 봤고, 무실점을 기록한 수비도 점점 안정돼가고 있다. '3위 목표'는 희미하지만 아직 제주의 가시권에 있다. 6위 제주(승점 54·14승12무12패)와 3위 수원(승점 67·19승10무9패)의 승점차는 13점이지만, 박 감독은 여전히 3위를 노래하고 있다. 혹시 아나. '영화광' 박 감독이 자신을 주연으로 한 기적의 영화를 만들어갈지.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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