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다. 코트는 변함이 없었다. 깔끔했다. 관중들의 몰입도가 뛰어났다. 공기마저 익숙하게 느껴졌다. 단지 바뀐 것이 있다면 그가 서 있는 자리였다. 홈팀이 원정팀 벤치에 서 있었다. 경기 전 소개 시간에 항상 틀어주던 음악도 없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도 무미건조했다. 익숙함과 낯섬을 동시에 느낀 그는 김호철 러시앤캐시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7일 현대캐피탈과의 2012~2013시즌 NH농협 V-리그 경기를 위해 천안유관순체육관 원정팀 벤치에 섰다.
김 감독에게 현대캐피탈은 고향과도 같다. 김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7년간의 지도자 생활 후 2003년 12월 현대캐피탈을 맡았다. 현대캐피탈을 높이의 팀으로 변신시켰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2차례(2005~2006, 2006~2007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천안유관순체육관은 2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그 경기장이다. 현대캐피탈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삼성에는 신치용, 현대에는 김호철'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현대캐피탈은 김 감독의 팀이었다.
그러나 2011년 5월 김 감독의 현대캐피탈 8년 치세는 막을 내렸다. 현대캐피탈은 김 감독을 총감독으로 위촉했다. 하종화 감독을 데려왔다. 사실상 해임이었다. 2006~2007시즌 이후 삼성화재에게 밀려 단 한 차례의 우승도 없었다. 2010~2011시즌에는 대한항공에 밀려 챔피언결정전에도 나가지 못했다. 책임을 졌다.
8년만에 찾아온 휴식에 김 감독은 푹 쉬었다. 그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달고 살았던 나빠졌던 건강도 회복했다. 휴식을 취한 김 감독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배구판으로 돌아왔다. 방송사 배구 해설자였다. 경기에서 한 발 물러났다.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배구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러시앤캐시를 맡았다. 러시앤캐시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2010~2011시즌 이후 모기업이었던 우리캐피탈로부터 버림받았다. 해체위기였다. 2011~2012시즌은 한국배구연맹(KOVO)의 관리를 받았다올 시즌을 앞두고도 인수기업을 찾지 못했다. 러시앤캐시의 네이밍 후원을 받았다. 1시즌을 버틸 자금을 마련했다. 그 사이에 인수 기업을 찾아야 했다. 성적이 중요했다. 김 감독은 가능성이 많은 러시앤캐시 선수들과 함께 기적을 쓰기로 했다.
러시앤캐시를 맡고난 뒤 2번째 경기가 바로 천안 원정이었다. 1년6개월만의 복귀였다. 경기 전 김 감독은 "코트가 낯설지 않다.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다"고 말했다. 천안의 현대캐피탈 팬들은 김 감독이 소개되자 우렁찬 박수로 전임 감독을 환영했다. 김 감독도 손을 들어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 감독은 경기 결과에는 그리 개의치 않았다. 경기 전에도 "아직 우리팀은 현대캐피탈에 도전할만한 상태가 아니다. 2라운드 정도가 지나야 팀이 제 궤도에 오를 것이다"고 했다. 러시앤캐시는 팀 사정으로 인해 열흘전부터나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아직 정상 경기력이 아니었다. 경기 중에도 김 감독은 특유의 열정적인 액션을 자제했다. 작전 시간에도 질타보다는 격려에 집중했다. 그동안의 어려움으로 주눅 든 선수들의 기를 살리는데 집중했다.
김 감독의 예상대로 러시앤캐시는 현대캐피탈에 0대3으로 완패했다. 현대캐피탈은 3세트 도중 노장인 이 호와 후인정까지 투입하는 여유를 보였다. 김 감독은 경기 후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전임 감독이 이끄는 팀과 만나서 조금 봐준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는 완패했다. 다음번 천안 원정 경기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현대캐피탈을 괴롭혀주겠다"고 다짐했다. 러시앤캐시의 다음번 천안 방문은 12월 27일(3라운드)이다. 이날 기준으로 딱 50일 남았다.
한편, 성남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부에서는 IBK기업은행이 한국도로공사를 3대0(25-14, 25-23, 25-18)로 꺾고 기분 좋게 2연승을 달렸다.
천안=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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