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우리 현실에 맞춰 재탄생한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 '서울*라보엠'
대중들에게 오페라는 여전히 즐기기에 쉽지 않은 예술장르다. 이탈리아 원어로 부르는 아리아, 낯선 공간과 시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자막을 봐야하는 불편함, 비싼 티켓가격 등은 '고급 예술'의 세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관객의 발목을 잡아왔다. '오페라는 아리아와 합창 등 음악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감안하더라도, 드라마를 선호하는 우리 관객의 성향과 오페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듯 했다. 이런 오페라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 1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라보엠'(연출 장수동)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온 서울 오페라앙상블의 열정의 산물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푸치니의 걸작 '라보엠'을 우리 현실에 맞춰 각색했다. 1830년대 파리를 1980년 서울로 옮겼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열정과 사랑을 '1980년 광주'를 매개로 되살렸다. 시인 로돌포와 재봉사 미미, 화가 마르첼로, 마르첼로의 연인 무제타 등 주요 인물들은 시인 한솔과 광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서울로 올라온 하영, 화가 창수와 연극 배우 지숙으로 환생했다. 장수동 예술감독은 한솔을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인물로 설정해 하영과의 사랑에 비장미를 더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와 사랑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고자했다.
설정만 바꾼 것은 물론 아니다. 노랫말 역시 우리말로 번역해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자막 영상을 설치해 드라마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도왔다. 오페라를 처음 접한 관객이라도 쉽게 극 속으로 빠져들도록 배려했다. 서양에서 비롯된 오페라를 '국내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랜 노하우가 이곳저곳에서 묻어났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취지를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영(미미) 역의 소프라노 이효진을 비롯해 한솔 역의 테너 장신권, 창수 역의 바리톤 김재섭은 최고의 기량으로 소극장 무대를 꽉 채웠다. 신촌의 다락방에서 처음 하영과 만난 한솔이 부르는 '그대의 찬 손', 하영이 부르는 '내 이름은 미미'는 우리 말로 들으니 더욱 감흥이 새로웠다. 푸치니의 걸작을 우리 스타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울*라보엠'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창단 20주년 기념작품이다. 원래 1997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2001년 재공연되어 CNN을 통해 전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에 13년만에 리바이벌 무대를 연 것이다. 서울오페라 앙상블은 소극장 오페라 운동을 통해 오페라의 대중화에 앞장 서 왔다. 30만원짜리 대극장 오페라가 아닌 10만원 이하의 소극장 오페라로 팬층의 저변을 넓혀왔다. 아울러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등을 우리 말로 번역해 공연해 화제를 모았으며, 창작 오페라 '춘향전', '백범 김구', '사랑의 변주곡' 등을 선보였다. '실험과 도전'의 창단 정신을 꾸준히 이어온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미디어전문기업 추계미디어와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처음 손발을 맞춰 소극장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의기투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1990년대 브로드웨이를 강타한 뮤지컬 '렌트' 역시 '라보엠'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1990년 즈음의 뉴욕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바꾸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서울*라보엠' 역시 '렌트'처럼 대박을 터뜨리기를 기대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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