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은 보수적인 타입의 감독이다.
상황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선수들을 믿는 스타일이다. 파격 보다는 안정을 선호한다. 하지만 러시아전은 달랐다. 0-0으로 팽팽히 맞선 후반 10분, 빠른 시간에 승부수를 띄웠다. 카드는 예상대로 이근호(상주)였다. 스피드와 기동력을 두루 갖고 있는 이근호는 후반 무뎌진 러시아 수비의 뒷공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적임자였다. 교체를 준비 중인 이근호와 함께 센터서클에 선 대기심의 교체판에는 10번이 적혀 있었다. 박주영(아스널)의 아웃 신호였다.
한 골이 필요한 시점, 가장 믿을 수 있는 공격수를 빼기란 쉽지 않다. 최근 부진하다고 하지만 박주영은 여전히 한방을 갖고 있는 공격수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경험도 있다. 이유가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의 스피드가 떨어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근호를 투입할 시간을 원래 그렇게 보고 있었다. 박주영은 전방에서 수비적 역할을 잘해줬다. 그 시점에서 이근호 투입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체력적 부분을 고려한 결정이다. 오랜기간 실전무대를 경험하지 못한 박주영은 지난 2번의 평가전에서도 90분을 소화하지 못했다. 월드컵은 격이 다른 무대다. 정신적 중압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같은 90분이 아니다. 박주영은 다른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좌우로 폭넓게 움직이며 러시아 수비들을 유인했다. 수비시에도 전방부터 과감한 압박을 펼쳤다. 박주영의 전반 활동량은 5.198km에 달했다. 그 결과 체력저하가 나타났다. 기록이 입증한다. 전반 최고 속도가 24.84km/h였던 박주영은 후반들어 22.28km/h로 떨어졌다. 러시아의 배후를 노리기에는 부족한 스피드였다. 결국 홍 감독은 이른 시간에 이근호 카드를 꺼내들 수 밖에 없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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