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 비가 갠 하늘은 높푸르고 햇살은 따갑다. 전형적인 초가을의 날씨. 올해는 절기가 빨라 곡식과 과일도 일찍 여물고 있다. 여름도 아닌 것이 본격 가을도 아닌 이즈음 과일향 폴폴 나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테마도 괜찮을 성 싶다. 우리나라 최초의 포도 재배지인 경기도 안성은 포도와 배의 명산지로 이 같은 여행을 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유기로 유명한 '안성(安城)'은 지명부터가 '몸과 마음이 편안한 고장'이다. 안성은 유별난 관광지는 없지만 먹고, 보고, 즐길 거리가 쏠쏠하다. 거기에 남사당 공연 등 문화예술이 발달한데다 천주교 미리내 성지, 칠장사 등 마음의 짐까지 잠시 내려둘 만한 곳들도 있어 행복한 여정을 꾸리기에 무난하다. 안성=글·사진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초가을 햇살에 과일이 탐스럽게 영글어간다. 익어가는 과일 향기를 좇아 떠나는 여행도 한결 풋풋하고 흡족한 여정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은 경기도 안성 삼정원 포도농원의 포도밭.
Advertisement
◆초가을 햇살에 영글어가는 안성의 과일
우리나라 최초의 포도 시배지 안성
Advertisement
초가을의 대표 과일 포도가 따가운 햇살 아래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햇살은 맛난 과일 생산의 필수요소다. 여름을 나며 머금은 싱거운 물기를 털어내고 하루가 다르게 당도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포도가 익어가는 목가적 풍광을 대하기로는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서운면 일원이 '안성맞춤'이다.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 들녘 곳곳에 주렁주렁 포도 알을 매단 포도밭이 산재해 있어 초가을의 풍요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초가을 햇살에 달달하게 익은 델라웨어 포도 .
안성에 유독 포도밭이 많은 것은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포도 재배지이기 때문이다. 113년 전인 1901년 안성성당 초대 신부인 프랑스출신 안토니오 콤벨트 신부가 미사용 포도주로 쓸 포도나무 머스캣 품종 두 그루를 들여왔던 게 그 유래다.
Advertisement
국내에는 경기도 화성 등 서해안 지역과 천안, 영동, 영천 등지가 유명 포도산지로 통한다. 그중 안성 미양면-서운면 일원도 빼놓을 수없는 곳이다. 서운면 소재지에서 청룡사 가는 길에는 온통 포도밭일색이다. 서운산을 기대고 있는 산지형 포도밭이 대부분으로, 캠벨, 거봉, 델라웨어, 청포도인 청수, 힘로드 등 다양한 포도가 생산되고 있다.
안성의 대표적 포도농장으로는 미양면 신기리 삼정원(031-672-1247) 을 꼽을 수 있다. 2만여 평 규모의 널찍한 포도농원에서는 캠벨, 델라웨어, 킹델라, 거봉, 힘로드, 마스카트 등 다양한 포도가 초가을 햇살아래 익어가고 있다. 친환경 재배법에 당도를 높이는 비가림 시설(비닐하우스)만도 5000평이 넘어 이 농장의 포도 품질은 정평이 나있다. 델라웨어의 경우 23블릭스, 거봉은 18블릭스에 이를 만큼 당도가 높다.
삼정원 포도밭 주인인 송태연씨가 포도재배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삼정원은 주변 조경 등 잘 가꿔진 전체 풍광이 대번에 농장주의 정성이 느껴지는 곳이다. 포도농장은 주인 송태연(76)-김혜자(74)씨 부부가 45년 동안 일궈낸 땀의 결실이 고스란히 밴 공간이다. 부부는 당시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커플로 귀농을 한 드문 사례다. 평소 흙 한 번 만져 보지 않았던 부부는 상머슴으로 변신해 연구를 거듭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명품 농원을 일궈냈다. 특히 농장 전체에도 방풍림을 조성해 간간히 불어 닥치는 태풍의 피해에서도 늘 비껴날 수가 있었다. 요즘에도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터에 나선다는 부부는 포도나무 한 그루, 포도 한 송이에도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다. 송태연 씨는 "시장에서 그냥 인정받는 법이란 없다. 자식처럼 돌보고 가꿔온 정성이 성공 비결에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송씨에 따르면 올해 포도작황은 좋은 편이다. 봄에 가물고 일조량이 좋아 예년에 비해 수확도 2주가량 빠르다고 했다. 삼정원에서는 10월 초중 순까지 포도 따기 체험(오전 7시~오후 6시)을 할 수 있다. 별도의 비용 없이 자신이 딴 것을 사가는 방식이다. 품종 구분 없이 2kg 1만 5000원, 4kg 3만 원이며, 택배(4kg 3만 원, 택배비 3000원 별도)도 가능하다. 특히 이곳에서는 바비큐 시설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넓은 잔디밭에 족구장 겸 배드민턴장도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포도알이 500원 짜리 동전 보다 크다.
안성의 포도축제
안성 포도가 제철을 맞으며 풍성한 포도축제가 열린다. 안성시 서운면이 주관하고 안성마춤 포도축제위원회가 주최하는 '제7회 안성마춤포도축제'가 오는 30~31일 안성포도박물관에서 펼쳐진다.
서운면은 안성포도 생산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곳으로 차령산맥 줄기인 서운산자락이 포도의 주산지다. 포도재배면적만도 700㏊가 넘어 일대가 거대한 포도밭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는 안성마춤포도축제에는 포도낚시대회, 포도 밟기, 포도 따기 포도시식 및 포도주 시음, 와인 만들기 등 포도 관련 체험은 물론 마차트레킹, 썰매타기 등 가족과 함께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올해는 포도농사 풍년으로 축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포도를 구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편 안성마춤 포도축제가 열리는 포도박물관은 안성시에서 2005년 한-칠레 FTA협상 체결 후 포도농가의 경쟁력을 키워 농민들의 소득을 높여주기 위해 국내 처음으로 건립된 포도박물관이다.
◆나주배 못지않은 유명세 '안성배'
전국 최초로 유기농 배농사를 시작해 성공을 거둔 김상설씨가 당골농원 배밭에서 배를 돌보고 있다.
봄이면 하얀 배꽃 천지를 이루던 안성 미양-서운면, 공도읍 일원 과수원의 배나무들은 추석을 앞둔 요즘 탐스런 과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경기도 안성 배는 전남 나주 것 이상으으로 유명하다. 역사성은 물론 재배면적(2100ha, 780농가)에서도 그러하다. 특히 안성의 5대 농특산물(쌀, 한우, 배, 포도, 인삼) 중 하나로, 시장에서는 대표적인 안성마춤 명품 브랜드로 통한다. 그중 안성에는 국내 대표적인 유기농 배 생산 농원이 있어 큰 자랑거리다. 안성시 미양면 신기리 당골농원이 바로 그곳으로, 농장주 김상설 씨(69)는 15년 전부터 전국 최초로 무농약 유기농 배농사를 지으며 질 좋은 배를 생산하고 있다.
당골농장의 배는 추석을 앞두고 본격 수확을 하게 된다.
지난 1965년부터 과수원을 일궈온 김상설씨가 친환경 농사꾼을 자처하게 된 계기는 2000년 농림부 교육을 통해서다. 친환경 유기농 재배법이 사람들의 건강을 이롭게 하고, 토양과 물을 살리며 소득 면에서도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김씨는 독일, 스위스 같은 유럽의 선진국처럼 유기농 작물만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지만 친환경 농업을 살길로 판단했다. 하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옳은 것과 이를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100% 무농약에 과수원에서 풀을 키워 배농사(초상재배)를 짓자니 소출이 떨어지고 각종 병충해에 애로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몇 해 동안 수입이 급감하자 참다못한 부인은 "당신만 애국자냐?"며 중도포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숱한 시행착오로 당장 그만두고 싶은 경우도 여러 차례. 고비마다 '내 이름을 걸고 최고의 명품 배를 생산하겠다'는 신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김씨는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유기농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기농기법으로 10년 정도를 지속하니 배나무도 제 모양을 갖추고 소출도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탄력이 붙었다. 김씨는 내심 유기농법이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드니 쉽사리 권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5000평 규모의 당골 배농장에서는 저농약재배 시 연간 70~80톤의 배를 생산했다. 하지만 유기농재배 초반에는 34톤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15년차인 올해는 64톤의 수확을 예상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김씨의 유기농배는 인기가 높다. 한살림, 안성마춤갤러리, 생협 등지에서 일반 배에 비해 30% 정도 비싸게 팔리고 있다. 당골농장에서는 9월초에는 원황, 9월 중순엔 만풍, 10월초에는 신고 품종을 수확 출하한다. 당골농장에서는 일반인 체험은 하지 않으며, 방문 구매-전화택배 주문은 가능하다. (031)672-1282
◆미식& 쇼핑 '안성마춤갤러리'
안성마춤 갤러리의 한우. 최상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식당이야? 갤러리야?' 안성에는 독특한 명물이 하나 있다. 농협에서 직영하는 '안성마춤갤러리'가 그곳이다. 이곳은 국내 농산물 브랜드의 선두주자인 '안성마춤 5대 브랜드' 홍보관겸 판매장이자 주력상품의 하나인 '한우'를 직접 맛 볼 수 있는 갤러리풍의 식당이다.
이름값이라도 하듯 이곳에서는 근사한 미술 전시회가 이어진다. 안성마춤 갤러리는 개관전으로 '도자벽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도예가 변승훈씨의 작품전을 유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요즘에는 중앙대 도예과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학생들의 참신한 작품을 주로 기업체 사장들이 구입해서 회사 로비 등에 전시하고 있다. 일종의 '메세나'운동처럼 학생들의 예술 활동을 후원해주는 것이다.
한편 안성마춤갤러리는 안성의 관문격인 경부고속도로 안성 IC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해, 교통여건과 접근성이 좋아 인근 평택, 수원은 물론 서울 강남-분당 등의 주민들이 맛있는 한우도 맛보고 질 좋은 농산물도 구임하는 외식-쇼핑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소시모(소비자시민모임)의 8년 연속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저력을 발휘하며 매년 20%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추석 등 명절 선물도 주로 주한대사관, 대기업회장 등이 단골로 구입해 갈 정도로 품질 면에서는 정평이 나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식당 메뉴로는 안성마춤한우스페셜등심 6만 원(160g), 슈프림 모듬 6만원(150g), 슈프림생갈비 5만원(300g), 슈프림꽃살 5만원(150g), 특등심 4만7000원(150g), 꽃등심 3만9000원(150g), 양념갈비 3만 5000원(300g), 왕갈비탕1만5000원, 한우탕 8000원, 냉면 6000원 등 다양하다.
안성마춤갤러리에서는 한우를 비롯해 쌀, 배, 포도, 인삼 등 안성의 5대 명품 특산물을 판매한다.
안성마춤갤러리의 원순재 점장은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안성'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안성 시민과 안성을 찾는 내방객에게 지역 작가-신진 학생들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게 하고자 전시회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전시해 작가들에게 힘을 주고 내방객에게도 순준 높은 볼거리와 명품 미식-쇼핑거리를 제공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소: 안성시 공도읍 승두리 598-47. (031)658-3966
◆보고 즐길 거리
남사당공연장
'안성맞춤' 유기와 남사당의 고장으로 유명한 경기도 안성은 접근성이 뛰어나다. 서울서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안성장터, 낚시터인 고삼저수지, 금광저수지의 호젓한 풍취,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서운산 청룡사와 불당골, 천주교 미리내 성지 등 보고 즐길 거리가 산재해 있다.
안성남사당공연장
700석 이상의 객석과 20m의 원형무대, 13m의 승강식 무대를 갖추고 있다. 남사당놀이를 비롯한 전통놀이 공연에 알맞게 설계됐다. 이곳에서는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풍물, 어름(줄타기), 살판(땅재주), 덧뵈기(탈놀이), 버나(대접돌리기), 덜미(인형극) 등 6마당과 10여 가지 세부기예를 전승하고 매주 토-일요일에 상설공연을 펼친다. 남사당놀이 체험교실도 함께 마련돼 있다.
남사당공연모습
안성맞춤공예문화센터
주말 가족단위 체험, 단체 체험도 가능하다. 천연염색 공방 '물들임', 한지 공방 '보담갤러리', 도자기 공방 '보뜰가마' 등 총 8개의 공방이 한데 있다.
안성맞춤천문과학관
4D영상 플라네타리움 등 여타 천문대에서는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300mm 굴절 주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
청룡사-칠장사
청룡사
청룡사는 조선 후기 안성남사당패가 머물며 겨울을 나던 곳이다. 고려시대 사찰로 원종 6년(1265)에 명본국사가 세우고 나옹화상이 중창했다. 대웅전(보물 824호)을 비롯해 청룡사 동종(보물 11-4호),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789호) 등의 유물을 거느리고 있다. 청룡사 부도 밭 오른편으로 난 계곡을 따라 가면 안성남사당놀이패의 바우덕이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창건됐다. 혜소국사비(보물 488호)를 비롯해 많은 보물을 간직한 사찰이다. 특히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한 사찰로 유명하다.
저수지 낚시
금광저수지
◇금광저수지
안성의 대표적 저수지다. 물 낚시와 겨울철 빙어 얼음낚시터로 유명하다. 진천방향으로 향하는 드라이브 코스도 운치 있다.
◇고삼저수지
안성 최대의 저수지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촬영 배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