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 마운드' 하면 김성근 한화 감독이다. 팀마운드를 불펜 중심으로 꾸리고 과감한 퀵 후크(3실점 이하 투수를 6회 이전에 강판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불펜 신봉자 김성근 감독도 말한다. "좋은 선발투수가 있다면 내가 왜 이런 생고생을 하나. 지난해 로저스가 던질 때는 오랜만에 편하게 지켜봤다." 선발보다 불펜에 집착하는 것은 피치못할 선택이라는 얘기다.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선발투수는 팀 마운드를 건강하게 만든다. 7이닝, 8이닝을 최소실점으로 막으면 이길 확률은 쑥 올라간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들 하는데 체감상 선발투수가 승리공식 맨앞이다. 선발이 좋으면 불펜 의존도는 줄어든다. 하지만 어느새 한국프로야구에서 불펜은 마운드 대세가 됐다. 불펜은 급하면 가동하는 옵션이 아닌 마운드 핵심 키로 성장중이다. 각 팀들은 지난 시즌이 끝난뒤 불펜 보강에 열을 올렸다. 롯데는 이례적으로 그룹 회장까지 나서 불펜진 보강을 언급했다. 롯데는 손승락과 윤길현 등 불펜으로만 외부 FA영입을 마쳤다. 한화는 첫 타깃으로 SK 마무리 정우람을 겨냥했다. '선발 야구가 아니라면 불펜 야구라도 해야한다'는 얘기는 옛말이다. 이보다 잇몸이 더 단단해지는 기현상이 일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첫째 원인은 선수난이다. 몇해전부터 가속화된 선수 구인난은 마운드가 제일 심하다. 쓸만한 선발투수는 씨가 마르고 있다. 몸값이 치솟아도 데려올만한 선수가 없다. 새로운 '화수분 야구'로 불리는 넥센도 장원삼을 삼성으로 보낸 뒤 '토종 선발 10승'이 끊어진 상태다. 외국인투수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선발투수가 없다. 제 9구단, 10구단의 창단으로 선수난은 더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5인 선발로테이션을 그나마 유지한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삼성은 피가로 클로이드 윤성환 장원삼 차우찬 등이 시즌 막판까지 선발로테이션을 지켰다. 피가로가 시즌 막판 부상을 경험했고, 클로이드도 구위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둘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이 불발됐다. 장원삼은 어렵사리 두자릿수 승수(10승9패)를 채웠지만 평균자책점이 5.80으로 치솟았다. 상황이 이랬지만 다른 팀들은 그래도 삼성을 부러워했다. 타팀 선발진은 차마 눈뜨고 못볼 지경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벤치 작전운용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선발을 탄탄하게 만들고 불펜으로 땜질을 하는 식이 아닌 불펜을 마운드 운용 중심으로 승격시키기에 이르렀다. 경기 중반에 강력한 불펜을 투입해 경기 흐름을 바꾸고 있다. 김성근 한화 감독의 영향도 크다. 김 감독은 SK 사령탑 시절 정우람 정대현 이승호 송은범 채병용 등으로 두터운 불펜을 만들었다. 외국인투수와 김광현을 제외하면 붙박이 선발이 거의 없었다. 승부처에 가장 믿을만한 투수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승기를 굳히고, 승부의 물길을 틀었다. SK 왕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본 야구계는 김성근 감독을 '욕하면서도 그 독특한 마운드 운용 역발상'을 배웠다.
수년간 타고투저가 지속되면서 이기다가 뒤집어지는 경기가 잦았다. '울화통 야구'를 지겹도록 본 팬들 입장에서도 불펜야구는 믿음을 더하는 행위로 환영받고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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