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이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아픔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4월 30일 아시아축구연맹(AFC) 몫의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에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선거는 그들이 짠 각본대로 흘렀다. AFC 회장 연임에 성공한 세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회장(바레인)과 세이크 아흐마드 알파라드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쿠웨이트)을 중심으로 중동의 카르텔이 형성됐다.
AFC의 FIFA 집행위원은 4명이다. AFC 회장은 당연직 집행위원이고, 3명을 더 선출하는 선거가 이어졌다. 그러나 '꼼수'가 있었다. FIFA 집행위원 3명은 동시 투표로 결정된다. 하지만 4년과 2년 임기로 분리해 투표를 진행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정 회장에게도 그들의 유혹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았다. 발언권을 요청하며 거부했지만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다.
2년 임기에 단독 출마한 알 사바 회장은 무혈입성했다. 이들과 손을 잡은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장과 텡쿠 압둘라 말레이시아축구협회장은 투표 끝에 4년 임기의 FIFA 집행위원에 당선됐다. 47개 AFC 회원국 가운데 46개국 대표가 투표에 참가했다. 1개국이 2표를 행사했다. 다시마 회장이 36표로 최다 득표했고, 압둘라 회장은 25표를 받았다. 합종연횡을 거부한 정 회장은 13표에 그쳤다.
당시 정 회장은 40개국을 방문, 지지를 호소했다. 아쉬움이 컸다. 그는 "국내나 외국에서 원하는 등 여건이 된다면 재도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래를 기약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세상이 일찍 금이 갔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비리의 덫에 걸린 FIFA의 제프 블래터 시대가 지난해 막을 내렸다. 2월 46세의 지아니 인판티노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이 새 FIFA 회장에 선출됐다. 부패의 온상으로 비판을 받아온 '절대 권력'인 집행위원회도 폐지됐다. 대신 37명이 참여하는 FIFA 평의회(FIFA Council)를 도입하기로 했다. 평의회는 FIFA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핵심 기구다.
정 회장은 최근 스포츠조선 창간 26주년을 맞아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평의회 출마 의사를 처음 공개했다. "지난해 선거를 통해 AFC 회원국 회장들과 친해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 잘 아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 분들이 한국 축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좋게 평가를 해주면 굳이 도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AFC 몫 평의회 위원은 7자리다. 기존 4명의 집행위원은 자동적으로 평의회에 포함된다. 남은 3자리 중 1자리는 여성으로 채워진다. 정 회장은 2자리 가운데 1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시 발로 뛰겠다는 뜻을 공개했다.
정 회장의 도전이 순풍에 돛을 달았다. 한국 축구 외교에도 마침내 봄이 오고 있다. 그동안 라이벌로 평행선을 긋던 '이웃 나라'를 먼저 품에 안았다. 중국과 일본, 북한 등이 정 회장의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을 비롯해 북한, 중국, 일본 등 10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이 정 회장을 만장일치로 FIFA 평의회 위원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의했다.
북한은 차치하고 중국과 일본은 축구 외교에서 가까우면서도 먼나라였다. 막판 FIFA 회장 선거 출마가 좌절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일본이 도와준다면 당선 가능성이 99%"라고 한 발언이 현 주소다. 한-중-일은 중요한 순간마다 분열됐다. AFC의 힘의 균형이 중동으로 넘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EAFF의 지지를 받아내며 첫 단추를 훌륭하게 뀄다. 이 뿐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저자세 외교로 AFC 회원국으로부터 "한국 축구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의 한수'도 있었다. 2월 FIFA 회장 선거에선 낙선했지만 세이크 살만 AFC 회장을 지지하며 껄끄러웠던 중동과의 관계도 해빙기를 맞았다. 지난해 AFC 집행위원에 선임된 후 활동도 활발했다.
FIFA 평의회의 아시아 몫 위원을 선출하는 AFC 총회는 9월 열릴 예정이다. 정 회장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감사드린다. FIFA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축구와 아시아 축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축구 외교력은 정몽준 회장이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FIFA 부회장 선거에서 5선에 실패한 후 '암흑기'를 맞았다. '사촌 동생'인 정 회장이 새 시대를 열고 있다. 일본과 중국 등 EAFF의 지지는 천군만마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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