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는 했다. 그러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순항하던 슈틸리케호가 첫 유럽 원정에서 '세계의 벽'을 절감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1일(한국시각)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레드불아레나에서 가진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1대6으로 참패했다. 한국 축구가 A매치에서 6실점을 한 것은 1996년 12월 16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가진 이란과의 1996년 아시안컵 8강전(2대6 패)이후 20여년 만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황의조를 원톱 자리에 놓고 손흥민 지동원 남태희를 2선에 배치하는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더블 볼란치(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엔 기성용 한국영, 포백 라인에는 윤석영 김기희 홍정호 장현수가 섰다. 골문은 김진현이 지켰다. 한국전을 하루 앞두고 유로2016 최종명단을 발표했던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알바로 모라타를 최전방에 세운 가운데 다비드 실바와 놀리토를 좌우에 놓는 스리톱을 들고 나왔다. 중원에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세스크 파브레가스, 브루노 소리아노가 섰고, 포백 자리엔 세자르 아즈필리쿠에타와 헤라르드 피케, 마르크 바르트라, 헥토르 베예린이 나섰다. 골키퍼 자리엔 이케르 카시야스가 배치됐다.
물러서지 않겠다던 슈틸리케 감독의 도전의지는 좋았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소속팀 경기를 뛰지 못한 유럽파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전방에 배치된 기성용 손흥민 지동원은 스페인의 압박에 고전하면서 활로를 찾지 못했다. 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해야 하는 기성용은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문제를 드러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손흥민은 전반 7분 남태희의 패스를 받아 스페인 문전 왼쪽에서 시도한 왼발슛 외에는 제대로 된 찬스를 잡지 못했다. 지동원 역시 무리한 돌파로 일관할 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전방 압박도 허술했다. 경기 초반 스페인의 빌드업을 잇달아 커트하면서 찬스를 만들어 갔지만, 스페인의 능수능란한 공간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했다. 실점 이후에는 우왕좌앙하다 압박마저 실종됐다.
수비라인은 말그대로 붕괴됐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전경기 무실점의 힘은 유럽에서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이니에스타를 중심으로 전개된 스페인의 전진패스에 잇달아 공간을 내줬다. 특히 풀백-센터백 자리의 빈 공간이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실점 위기가 잇달아 발생했다. 전반 30분 실바에게 왼발 프리킥골로 실점한 지 1분 만에 장현수-김진현 간의 소통 미스로 파브레가스에게 허무하게 실점한 장면은 분명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전반 38분에도 침투패스를 막지 못하면서 놀리토에게 세 번째 골까지 내준 부분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후반전에도 두 골을 더 내주는 동안 맨마킹과 위치선정 등 모든 면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이 이 용 임창우 곽태휘 등 수비수를 잇달아 바꿨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5번째 골을 얻은 스페인의 집중력이 떨어지며 추가실점이 나오지 않은게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K리거들의 활약은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후반 교체투입된 이재성(전북 현대) 주세종(FC서울)의 활약이 컸다. 이들이 투입된 이후 볼 점유율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후반 37분 득점까지 연결됐다. 꾸준한 경기력과 이를 통한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을 수 있는 경기였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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