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시절이던 2004년 연수차 지켜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별천지였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명성에 걸맞는 스타들과 경기력에 감탄을 연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지켜본 잉글랜드의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웨일즈를 이기긴 했지만 내용이 없었다. 중원에서의 연계 플레이나 패턴이 없었고 플레이메이커도 실종됐다. 세밀함은 떨어졌고 창의적인 선수도 없었다. 파워나 좁은 공간 깨기도 어정쩡 했다. 중원에 포진한 델레 알리는 전방 공격 지원 뿐만 아니라 수비 가담 능력 등 전체적인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잉글랜드 축구가 과도기에 접어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이 호지슨 감독이 내놓은 전술을 뜯어보면 잉글랜드도 나름 변화를 주려는 모습이었다. 선굵은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밀집수비를 깨는 세밀한 플레이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졌다. 현대축구는 중원싸움에서 승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잉글랜드에는 이런 중심을 잡아줄 만한 선수가 없었다. 웨인 루니가 전방이 아닌 2선에 배치된 것은 이런 호지슨 감독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3-5-2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웨일즈는 선전했다. 2실점을 하긴 했지만 수비 조직력은 좋았다. 스리백 전술은 상대에게 측면을 내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상대 공격을 차단한 뒤 어떻게 역습을 전개하느냐가 관건이다. 전반전에는 이런 과정이 잘 진행됐지만 후반 중반을 넘기면서 체력이 고갈된 게 아쉬운 부분이다. 가레스 베일에 의존하는 공격 패턴 역시 한계점을 드러낸 부분이다.
잉글랜드를 우승후보로 꼽긴 어려울 듯 하다. 독일이나 스페인, 이탈리아는 리딩클럽의 경기 스타일이 대표팀까지 전이됐고, 가장 최적화된 선수들을 골라 자기 만의 색깔을 확실히 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2% 부족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눈길이 갔던 것은 잉글랜드 서포터스의 열정이다. 러시아 훌리건과의 충돌 여파로 어수선할 것처럼 보였지만 90분 내내 경기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웨일즈 팬들도 목소리를 높였지만 분위기를 이끄는 관록은 부족했다. 잉글랜드 선수들이라면 팬들을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승의 기쁨을 안은 이들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서 승리를 자축할까.
스포츠조선 해설위원·전 포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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