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고, 또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한번의 실수가 불러온 운명은 가혹했다. 박태환은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기간이 끝난 후인 올해 4월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 4종목에서 모두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하지만 '도핑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막혀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뻔 했다. 박태환은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판단을 구하는 힘겨운 싸움 끝에 대회 개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7월 8일에서야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받고 리우올림픽 출전을 확정 지었다.
박태환이 7일(이하 한국시각) 마침내 스타트대에 선다. 리우의 올림픽 아쿠아틱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다. 오매불망 그리던 바로 그 무대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올림픽 하나만을 바라보고 왔다. 그는 6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생각을 했는데 선수는 선수로 보여드려야 한다. 물론 지친 적도 많았다. 생각 안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지치더라. 그래도 올림픽을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박태환이 올림픽을 그토록 갈망한 이유는 '명예회복' 때문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박태환이 택한 해법이 눈에 띈다. 그는 '잘'하기 보다는 '즐겁게' 하려고 한다. 박태환은 "사실 이번에 좋은 레이스를 하고 싶고, 저도 사람인지라 금메달, 은메달 다 따고 싶다"며 "'어떻게 해서 올림픽을 나가게 됐는데 열심히 할 생각을 해야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경기를 좋게 마무리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환이 리우에 입성한 후 가장 많이 뱉은 말은 '즐겁게'였다. 처음에는 으레 하는 립서비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태환은 오전, 오후 연습 내내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실격의 아픔 속에서도 웃었던 박태환, 그 모습 그대로다.
물론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국 마이애미 올랜도에서 전지훈련을 했지만 훈련량이 경쟁자들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리우 입성 후에도 트레이너 등 전담팀이 적절한 대회 출입인가증(AD 카드)를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태환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준비한 시간이 남들보다 부족했지만 이런 것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 과정에서도 열심히 했으니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주변 여건도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내가 헤쳐나가야 할 몫"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호주 출신의 던컨 토드 코치도 "박태환이 지금처럼 즐기면서 편안하게 레이스를 한다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영천재였고, 시간이 부족했지만 노력했고, 지금은 즐기고 있다. 토드 코치 말대로 '즐기는 박태환'이라 기대가 된다. 박태환은 라이벌들과 함께 한 기분에 대해 묻자 "나는 랭킹 6위일뿐"이라고 웃었다.
너무 잘하려는 의욕이 부담이 되는 순간 실력발휘가 안 될 수가 있다. 만약 박태환이 출발 총성이 울린 후에도 즐겁게 레이스를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진정 기적을 꿈꿔도 좋을 것 같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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