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넘쳤지만 동메달은 인연이 아니었다.
남자 탁구가 단체전에서 동메달 문턱에서 좌절했다. '베테랑 깎신' 주세혁(36·삼성생명), '맏형'과는 띠동갑 후배인 정영식(24·미래에셋대우), 이상수(26·삼성생명)가 18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리우센트로 파빌리온3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결정전에서 독일에 무릎을 꿇었다.
탁구 남자 단체전은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첫 발을 뗐다. 한국은 베이징에서 동메달, 2012년 런던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우에서 동메달을 노렸지만 3개 대회 연속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남자 탁구에 새 희망도 꿈틀거렸다. 세대교체라는 감동의 울림이 있었다.
주세혁은 기나 긴 여정을 마감했다. 그는 "올림픽 단체전 메달을 따면 내 모든 임무는 끝난다"고 했다. 하지만 꿈은 이루지는 못했다. 노메달이었다.
주세혁은 뿌리깊은 나무였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 남자단식 준우승 이후 13년간 철저한 자기관리로 정상권을 지켰다. 리우는 2004년 아테네 대회 이후 세번째 올림픽이었다. 4년 전 런던 대회 후 선배 오상은(39))과 후배 유승민(34)이 떠났다. 주세혁도 국가대표 은퇴를 고려했다. 그러나 떠날 수 없었다. '징검다리'가 필요했고, 주세혁이었다.
그는 수년째 자가면역질환인 '희귀병' 베체트병을 견디고 있다. 4년 전 런던 대회 직전 찾아온 기분 나쁜 발목 통증,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이다. 컨디현 유지가 쉽지 않지만 그는 견디고, 또 견뎠다. "이제는 후배들의 몫이다. 정영식, 이상수가 제 몫을 할 것이다. 어린선수들도 있다. 앞으로도 한국 탁구는 4강권을 유지할 것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피날레 무대는 투혼이었다. 두 번째 단식에서 드미트리 오브차로프에 2대3(5-11, 9-11,11-8, 11-2, 11-6)으로 패했다. 네 번째 단식에서는 티모 볼과 맞섰지만 0대3(8-11, 9-6-11)으로 무릎을 꿇었다.
주세혁은 올림픽 무대를 함께 누빈 것으로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주세혁의 바통은 정영식이 받았다. 그는 리우에서 새 시대를 열었다. 넘지 못했지만 단식 16강에서 세계 1위 마롱(중국)을 상대로 2세트를 먼저 따낸 명승부를 연출했다. "정영식은 여전히 젊고 가능성이 충만한 선수다. 지난 2년간 그는 엄청나게 성장했고, 톱 레벨 경쟁자 중 한명이다. 그는 경기를 정말 잘 풀어갔고,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마롱도 인정했다.
물론 단체전 동메달도 문턱에서 좌절했다. 첫 올림픽 메달을 품에 안지 못했다. 정영식은 첫 단식에서 접전 끝에 바스티안 스테거를 3대2로(12-10, 6-11, 11-6, 6-11, 13-11)꺾고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동메달 문을 활짝 여는 듯 했다. 그러나 세 번째 경기에서 이상수와 복식으로 짝을 이뤄 대혼전을 펼쳤지만 2대3(11-9, 6-11, 7-11, 11-9, 9-11)으로 패하며 두 번째 단식의 패배를 만화히지 못했다.
그래도 정영식은 주세혁이 떠난 남자 탁구의 간판으로 우뚝섰다. 반전이었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영식은 2011년 미래에셋대우 유니폼을 입은 이후 국내 실업 최강으로 입지를 굳혔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정영식의 앞에는 늘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정영식도 "그게 제일 힘들없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더 독기를 품고 훈련했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영식은 지난해 6월 호주오픈 탁구 단식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섰다. 기세를 올린 정영식은 한 달 뒤 코리아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선배 주세혁을 누르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30위권을 맴돌던 세계랭킹은 수직 상승해 10위권까지 치고 올라갔다.
올림픽 무대에서 정영식의 탁구는 폭풍 성장했다. 세계 톱 랭커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았다. 장기인 백드라이브는 견고했다. 연결력에 치중하는 약한 탁구로 폄하됐던 그의 탁구가 강해졌다. 거침없는 선제공격이 탁구대를 뒤흔들었다. 정영식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
3시간 46분의 혈투였다. 주세혁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지만 정영식이 그 자리를 꿰차면서 남자 탁구는 리우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를 완성했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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