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모습으로,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팀을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스타가 떠날 때는 늘 진통이 따랐다. 경기력이 떨어진 게 분명한데도 선수 마음은 또 다르다. 조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지막 불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과한 욕심으로 쉽게 매도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구단과 지난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많은 야구인들이 "은퇴 시기가 되면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기가 어렵다"고 얘기한다.
지난 주 두 명의 스타 선수가 은퇴를 발표했다. 두산 베어스 홍성흔(39)과 LG 트윈스 이병규(42)가 선수 유니폼을 벗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구단이 보류선수명단을 발표해야하는 마지막까지 어려움이 있었다. 이들의 소속팀 두산과 LG는 사실상 은퇴를 종용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둘은 올해로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또 올시즌 팀 내 입지가 좁아져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경쟁에서 밀린 홍성흔은 1군 리그 17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병규는 팀 리빌딩 작업이 이어진 가운데, 정규시즌 최종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타석에 섰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위한 배려의 뜻이 담긴 출전이었다. 두산과 LG, 모두 두 프랜차이즈 스타를 품고 가기에는 부담이 컸다. 베테랑 선수에 대한 배려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세대교체, 팀 리빌딩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선수 개인의 기량뿐만 아니라, 팀이 처한 상황이 선수 은퇴 시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매끄럽게 은퇴 시기를 정하고, 준비할 수는 없을까. 많은 팬들이 메이저리그 사례를 부러워한다. 이번 시즌에 앞서 은퇴를 예고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데이빗 오티스(41)는 공언대로 박수를 받으며 유니폼을 벗었다. 마지막 시즌에 타율 3할1푼5리-38홈런-127타점을 기록하고 아메리칸리그 지명타자 부문 실버슬러거상까지 받았다. 선수 생활 연장을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성적이었는데도, 그는 미련없이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시즌에는 뉴욕 양키스의 '캡틴' 데릭 지터(42)가 은퇴를 예고한 뒤,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의 '영원한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41)도 예정대로 올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구로다는 마지막 해에 10승(8패·평균자책점 3.09)을 거두며, 히로시마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는 '국민타자' 이승엽(40)이 기다리고 있다.
이승엽은 올해 142경기에 나서 타율 3할3리-27홈런-118타점을 기록했다. 프로에서 맞은 22번째 시즌. 40대에 접어든 이승엽은 여전히 이름값에 걸맞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했고, KBO리그 개인 최다 1411점타점에 최소 시즌 2000안타 기록까지 수립했다.
2015년 말 2년간 총액 36억원 계약. 이승엽은 2년 계약이 끝나는 2017년 시즌 후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주축 타자로 맹활약을 했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다. 팬들은 조금 더 '선수 이승엽'을 보고 싶어하지만, 그는 "남은 1년 동안 더 열심히 하겠다"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홍성흔, 이병규를 보면서 이승엽을 떠올리는 팬들이 많을 것 같다.
내년 시즌 원정 마지막 경기에 이승엽이 나설 때마다 원정팬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승엽은 성적뿐만 아니라, 떠나야할 때를 스스로 정하고 이를 지킨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의 '축복'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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