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프전을 위해 한선수에게 따로 주문한 건 없다. 나보다 더 잘한다. 동료들의 컨디션에 따라 공을 배분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있겠는가."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32)에 대한 박기원 감독(66)의 신뢰는 탄탄했다.
지난 시즌까지 대한항공은 한선수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팀으로 평가됐다. 심지어 '한선수의 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한선수는 빠른 두뇌, 센터 블로킹 제거, 공 배분 등 세터가 갖춰야 할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높은 블로킹에다 공격적인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유광우(삼성화재)와 함께 최고의 세터로 인정받았다. V리그 연봉킹(5억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감독과의 불화 등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가 많았다. 예민한 성격은 종종 코트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한선수는 올 시즌 박 감독이 부임한 뒤 180도 달라졌다.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았다. 박 감독은 대한항공 지휘봉을 잡은 뒤 "나는 한선수의 능력을 100% 끌어낼 자신이 있다"고 공언했다. 박 감독의 노하우는 '칭찬'이었다. 박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 시절 한선수의 경기력을 끌어올렸던 경험을 그대로 프로팀에도 적용시켰다.
그러자 그동안 폭발하지 않았던 잠재력이 고개를 들었다. 한선수는 단순함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동료들이 어떤 공을 잘 때리는지에 집중했다. 그의 능력은 29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현대캐피탈과의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더 빛을 발했다.
한선수는 공격이 제한된 두 명의 리베로를 제외하고 경기에 등록된 10명의 공격수 중 8명을 모두 활용했다. 한선수가 버티고 있는 이상 대한항공에는 '몰빵 배구'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의 모든 포지션을 지뢰로 만들었다.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외국인 공격수 가스파리니의 공격점유율을 34~50%로 제한하고 토종 공격수들에게 공을 배분했다. 특히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는 센터 김철홍과 진상헌의 속공을 통해 날개 공격수의 부담을 줄였다.
그래도 해결사 가스파리니와 찰떡호흡을 보여줬다. 25득점을 올린 가스파리니는 55%의 높은 공격성공률을 보였다.
한선수는 컴퓨터 토스 말고도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동료들의 투혼을 깨웠다. 1세트에서 12득점밖에 따내지 못한 부진을 딛고 과감한 토스로 대한항공이 내리 3세트를 따내는 저력의 중심에 섰다.
5전3선승제의 챔프전에서 2승 고지를 먼저 밟은 대한항공은 다음달 1일 펼쳐질 4차전에서 승리할 경우 구단 창단 이후 최초로 챔프전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천안=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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