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종목 중 지역 연고로 유소년시스템이 가장 잘 구축돼 있는 종목은 '축구'다. 구조적으로 타 종목에 비해 최고의 관리 시스템을 갖춘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울타리 속에서 운영되는 축구가 당연히 유소년시스템이 '빨리' 그리고 '잘'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지만 반대로 축구 빼곤 나머지 메이저 종목(야구, 농구, 배구)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계획과 생각은 가지고 있다"는 변을 늘어놓는 것은 실행되지 않은 시점에선 핑계에 불과하다.
첫 테이프부터 잘못 끊은 점이 없지 않다. 스포츠 종목이 프로화를 준비하기 위해 그린 설계도에 애초부터 유소년시스템을 위한 밑그림은 없었다. 프로배구도 2005년 태동한 이후 리그의 인기 향상과 안정적 운영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유소년들의 배구 관심 재고를 위한 소소한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8년째 KOVO컵 유소년 배구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유소년 클럽 배구대회를 비롯해 현역 스타와 은퇴 선수들을 활용한 배구 교실과 원포인트 클리닉 등 사업이 잡혀있다. 그러나 매 시즌 단발적으로 끝나는 사업일 뿐 장기적 플랜은 아니다.
KOVO는 자구책도 마련했었다. 그 일환이 2년 전부터 실시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었다.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는 유소년시스템 구축이었다. 옵션 계약으로 인해 의미가 퇴색된 샐러리캡을 훨씬 초과하는 외국인선수의 몸값을 트라이아웃으로 제한하는 대신 줄어든 몸값의 일부를 유소년에 투자하자는 내용이었다. 남자 구단은 1억6000만원, 여자 구단은 1억2000만원을 재투자하자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각 구단 모기업의 '돈의 논리'에 막혔다. 기업들은 수익성이 없는 부분에 투자를 꺼린다. 설령 전체 파이에서 아낀 돈일지언정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익에 절대 돈을 쓰지 않는다. 당시 유소년시스템 구축을 위한 구단들의 재투자를 명문화시키지 못한 KOVO의 잘못이 있다.
그러나 KOVO만 나무랄 수 없다.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에 갖힌 각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 중에서도 유소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KOVO의 큰 그림에 발 맞춰 나가려는 구단도 있긴 하다. V리그의 리딩 구단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다. 그러나 이 두 구단 뿐이다. 나머지 11개 구단들은 현상 유지만 바라고 있다. 프로 팀 운영 자체도 벅차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또 다른 변수는 지역 연고팀 배분이다. 각 구단들의 의견이 가장 많이 상충되는 부분이다. 2016년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전국 초·중·고 배구팀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70개, 중학교 47개, 고등학교 42개다. 그러나 실력이 좋은 선수가 많이 몰려있는 팀은 서울과 인천, 경기도 그리고 부산, 경남 정도다.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되는 팀을 자신의 유소년팀으로 묶기 위한 구단들의 기 싸움 속에 배는 표류하고 있다.
풀어야 할 세부 문제는 적지않다. 비단 한 가지 예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흥국생명의 경우가 애매하다. 태광그룹의 금융계열사인 흥국생명은 그룹 세화재단에서 세화여중과 세화여고 배구팀을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 팀(인천)과 유소년팀(서울)의 연고지가 충돌한다.
때문에 KOVO는 재투자를 통해 자신의 연고지에 초-중-고 배구팀을 창단 작업을 제안했다. 그러자 또 다시 프로 산하 유소년 팀에 포함되지 못한 학교에 대한 반발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은 역대 최저 출산률을 찍었다. 이젠 자신의 아이를 배구 선수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배구 발전을 도모해야 할 KOVO 이사진과 구단 실무자들의 이기주의와 탁상공론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대의를 위한 양보도 필요하다. 유소년시스템은 당장의 수익을 따지면 절대 할 수 없는 사업이다. 최소 6년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유소년 육성은 한국 배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황금 열쇠가 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바로 적기다.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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