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수트 차림에 파이프를 입에 문 하정우, 멜빵 차림의 유아인.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비주얼이다.
1910년부터 1945년 일제강점기 시대가 최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다뤄지며 뜨거운 컨텐츠로 떠올랐다. 그 시대만이 가진 향수와 멋, 패션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지게 됐다. 그 시절의 서울, 경성 거리에는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과는 달리 멋쟁이들이 즐비했다. 문호 개방으로 서양 각국의 문물이 들어왔고, 사상과 가치관도 빠르게 변했던 시대. 그중 가장 두드러지게 변화한 것이 바로 패션이다. 풍류를 알고 새로운 멋을 감지한 이들은 한복을 벗어 던지고 상투를 자른 뒤 서양식 복색에 양산, 금시계, 베레모 등 액세서리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시대에 고리타분한 모습을 벗어 던지고 근대의 스마트한 지성인으로서의 자아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패션을 활용했던 것이다.
현재 방영 중인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경성 시대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배우 유아인이 연기하는 1930년 경성시대에 작가 서휘영의 패션은 당대 지식인의 모습을 멋스럽게 그린다. 넓은 칼라, 단추가 몇 개 풀어헤쳐진 셔츠와 2017년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오버 사이즈 셔츠에 더해진 멜빵. 그리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동그란 안경은 자유분방하면서도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까르페 디엠'이라는 바를 운영하며 독립군의 자금을 대는 경영인 고경표는 늘 정제된 수트에 파이프, 신사의 상징인 중절모까지 다 갖춰 입으며 상류층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임수정은 남장을 하며 살아가는 뉴스보이 스타일이다. 베레모와 빛바랜 컬러의 블라우스 차림을 하고 있지만, 여자로 변신했을 땐 도트 패턴의 원피스와 장갑으로 레트로 무드를 한껏 살린다.
이들의 아이템은 시대 배경을 살려 따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현재 판매되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아이템들이라 더욱 매력적이다. 지금의 멋이 살짝 들어 있으면서도, 시대적 분위기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드라마의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더욱 짙게 경성 남자들의 패션을 보여준 건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이다. '밀정'은 개봉 이후 '밀정 코트' '밀정 수트' 등이 화제가 될 정도로 독립군의 패션을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잘 재단된 수트부터 여러 겹 둘러 입은 롱 코트와 모자는 중후한 느낌과 함께 당시 독립군들의 결연한 의지까지 전했다. 특히 공유의 잘 올린 포마드 헤어와 신성록의 잘 닦여진 광택 있는 구두는 이 영화 속 패션의 절정. 실제로 당시 의열단 단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위태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늘 주어진 하루가 마지막 하루라는 생각으로 완벽하고 반듯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해방 후 경성의 모습을 그린 건 상영 중인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이다. 운전수 고수와 경성 최고 재력가 김주혁은 젠틀하면서 품격 넘치는 그 시대 최고의 멋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경성시대 남성들을 다룬 영화 속에서 그들은 대부분 멋스러운 양장 차림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경성시대에는 양복이 보급화 되긴 했어도 일부 상류층이나 친일파들만 착용했을 뿐 대체적으로 서민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차림이다.
경성시대 여성 스타일은 영화 '암살'의 전지현 그리고 '해어화'의 한효주, 천우희가 잘 보여준다. 이들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 여성들은 서양식 화장 도구들과 메이크업 방식을 수용하며 점차 새로운 여성성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남성들의 패션에 비해 훨씬 보수적이었던 여성들은 끊임없이 탄생하는 유행의 담론 속에서 고뇌했고 전통 가치와 현대적 가치가 상충한 덕에 한복과 모던한 옷들이 공존하는 풍경을 만들었다. '해어화'의 천우희와 한효주는 이 교차 포인트를 잘 보여준다. 기생에서 대중 가수로 직업이 변하면서 경성시대 한복의 여러 형태부터 넓은 챙의 모자와 어우러지는 가장 트렌디한 패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한국 독립군 소속 저격수와 친일파 집안의 딸로 1인 2역을 연기한 '암살'의 전지현 역시 그러하다. 독립군 저격수일땐 동그란 돋보기 안경과, 롱 코트, 스카프 등 수수하면서도 고독이 묻어나는 스타일을, 부유한 친일파 집안의 딸을 연기할 땐 과감한 컬러의 원피스나 챙이 크게 달린 모자 등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 두 인물의 교차점은 '암살'의 최대 관전 포인트였을 뿐 아니라 당대를 살았던 경성 여성들의 계층별 차이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힘있는 매개체가 됐다.
gina1004@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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