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이건 나보고 죽으란 이야기지!"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66)의 투정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2일 경기 여주 솔모로CC에서 진행된 제5회 배구인 골프대회. 오랜만에 필드에 선 박 감독이다. "간만에 나오려고 신발장을 열었는데 골프화가 다 삭았더라고."
특유의 호쾌한 웃음으로 나섰지만, 걱정이 앞섰다. 상대들이 쟁쟁했다. 팔팔한 40대 지도자 틈에 꼈다. 박 감독은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44),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43), 신진식 삼성화재 감독(42)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이야…. 골퍼들보다 더 몸이 좋은 감독들이네. 저 친구들은 선수지 선수. 난 오늘 무사히 도는 걸 목표로 해야겠어…."
반면 '청춘'들은 여유로웠다. 동시대에 코트를 누비며 우정을 쌓았던 세 명의 젊은 사령탑들은 화기애애했다. 스스럼 없이 농담을 건네며 티오프를 기다렸다. 김세진 감독은 특유의 넉살로 "아이구. 박 감독님께서 우리 조에 오셨네~. 박 감독님 재미있게 치실 수 있도록 잘 밀어드려야겠네요"라고 했다.
김상우 감독도 싱글벙글 웃었다. "편한 마음으로 왔어요. 그런 자리잖아요. 오히려 박 감독님께서 부담을 가지실까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저희가 편하게 잘 맞춰드려야죠."
신 감독은 조금 달랐다. 그는 "밀어주기요? 김세진 감독과 김상우 감독이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에이~ 안 되죠.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치고 와야죠"라며 박 감독 쪽을 슬쩍 보며 웃었다.
코트 위에선 누구보다 당당한 박 감독이지만, 그린 앞에선 한 없이 작아졌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박 감독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감독님 술, 담배 모두 끊으셨다 들었습니다. 저희보다 공도 한참 멀리 치시겠는데요", "저희도 요즘 잘 안 되더라구요. 잘 부탁드릴게요 감독님."
박 감독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40대 젊은 사령탑들 사이에 낀 박 감독.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전반 9홀까지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박 감독이 뒤로 처졌다. 하지만 후반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 감독이 맹타를 쳤다. 4연속 파를 기록하더니 버디까지 잡아냈다.
그러나 역전극은 쓰여지지 않았다. 박 감독은 89타로 조 최하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막판 스퍼트는 후배들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라운딩을 마친 박 감독. 한결 여유있는 표정으로 "뭘~. 그냥 쳤어. 날씨 더워서 힘만 들었지"라며 너털 웃음을 지었다. 한 수 접어주겠다던 40대 감독들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승부사는 승부사네요. 전반엔 땅을 조금 파시더니 후반엔 다른 사람이 됐어요."
여주=김가을 임정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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