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가 떠릴 정도로 생각하기 싫지만, 아직도 그 날이 생각이 납니다. 정확하게는 그 날을 일부러 떠올립니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여전히 '그 날'의 아픔을 잊지 못한다.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2017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이 펼쳐졌던 5월31일. 이 전까지 조 감독은 꽃길을 걸었다. 매력적인 공격축구를 앞세운 제주는 재미와 성적,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K리그에서는 1~2위를 유지했고, ACL에서 체면을 구겼던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16강에 올랐다. 1차전에서도 2대0 완승을 거두며 8강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조 감독의 리더십에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2차전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0대3 충격적인 패배로 ACL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이어진 난투극 사건으로 더 큰 수렁에 빠졌다. 일부 선수들이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으며 지독한 후폭풍을 겪었다. 우승을 노렸던 FA컵에서도 탈락했다. 연이은 시련에 조 감독도 충격에 빠졌다. 전화기는 꺼졌고, 훈련장에서도 열정을 잃은 모습이었다. 내용과 상관없이 이기지 못하는 경기가 늘어났다. 제주는 어느새 6위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흔들리던 조 감독이 다시 중심을 잡았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가 택한 것은 '믿음'이었다. 구단 직원들을 믿었다. 코칭스태프를 믿었다. 그리고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더 굳건히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꾹 참았다. 이 전에 해준 얘기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이 먼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조 감독의 믿음은 주변을 깨웠다. 프런트는 다시 한번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정성이 통했는지 조용형과 백동규의 징계가 감경됐다. 마르셀로와 황일수가 빠졌지만, 윤빛가람과 류승우가 가세하며 전력 공백도 최소화했다. 코칭스태프는 조 감독이 P급 라이센스 교육으로 자리를 비운 공백을 훌륭히 메꿨다. 선수들은 스스로 소통에 나섰다. 조용형 같은 고참들은 물론 진성욱 같은 신참들까지 후배들에게 밥을 사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이 선수단 사이에 퍼졌다. 선수들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달라진 분위기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6경기 무패행진(5승1무)을 이어가며 3위(승점 47)로 뛰어올랐다. 한경기를 덜 치른 제주는 선두 전북(승점 54)까지 가시권에 뒀다. 무엇보다 매년 지독하게 발목을 잡았던 여름징크스를 넘었다. 시즌 초 재미를 봤던 3-4-1-2 포메이션으로의 회귀, 겨우내 두텁게 한 스쿼드 등이 큰 힘을 발휘했지만, 역시 가장 큰 원동력은 선수들의 정신력이었다. 제주 선수들은 끈질긴 모습으로 뛰고 또 뛰었다. 조 감독이 부임부터 강조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조 감독은 아직 웃지 않았다. 시즌이 끝날때까지는 아직도 많은 경기가 남았기 때문이다. 상승세는 상승세일 뿐이다. 여전히 제주는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다. 조 감독은 겸손하고, 냉정하고, 간절할때 비로소 승리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날만큼 여실히 배운적이 없다. 그래서 조 감독은 지금도 그날의 아픔을 계속해서 되뇌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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