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스포츠 중계의 꽃은 현장 중계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시청자들을 대신해 경기장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앉는다. TV화면이 아닌 경기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보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심도있으며 동시에 좀 더 재미있는 중계가 가능하다.
다만 해외에서 열리는 스포츠 경기 중계의 경우 현장 중계가 쉽지 않다. 비용이 많이 많이 든다. 일정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 중계하는 해외 스포츠 대부분은 오프튜브(국내에서 스튜디오에서 화면을 보고 하는 중계)방식이다.
시청자들은 항상 현장중계를 갈망했다. 요구에 답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현장중계가 펼쳐진다. SBS스포츠가 22일 오후(영국 현지 시각, 한국 시각 23일 오전0시) 런던 웸블리에서 열리는 토트넘과 리버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9라운드 경기를 현장에서 중계한다. EPL 현장 중계는 2016년 9월 이후 25개월만이다.
중계에 나서는 박문성 해설위원, 이재형 캐스터, 홍재경 아나운서를 영국 런던 웸블리 앞 호텔에서 만났다. 현장 중계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번 현장 중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첫 현장의 추억 그리고 기대
박 위원과 이 캐스터에게 이번 현장 중계는 각각 여섯번째와 네번째다. 국내 방송인들 중 EPL 현장 중계 경험이 가장 많다. 대단하다는 찬사에 두 사람 모두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첫 현장 중계의 추억부터 물었다. 박 위원의 첫 현장 중계는 2010년 10월 30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트래퍼드였다. 맨유와 토트넘의 2010~2011시즌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경기였다.
"올드트래퍼드는 크고 멋지잖아요. 그런데 중계석은 너무 작고 초라했어요. 캐스터로 함께 갔던 (배)성재와 딱 달라붙어서 해설을 했어요. 마치 초등학교 책상에 앉은 느낌이었어요. 알고보니 구단의 철학이 있더라고요. 여유있는 공간은 관중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느낌이 남달랐어요."
말을 이었다.
"정말 템포가 빠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중계로 따라가려고 하니까 실제로 힘들었어요. 집중을 하지 않으면 경기 장면을 놓치겠더라고요."
질문을 던졌다. 오프튜브중계를 할 때도 경기 템포는 똑같이 빠르다. 육안으로 보는 것과 TV화면으로 보는 것에 템포 차이는 있을리 만무했다.
"오프튜브에서는 카메라가 이미 정리해준 상태에요. 그러니까 TV에 보이는 것만 보고 따라가면 되는 거죠. 현장 중계는 화면의 커팅 자체도 제가 선택해야 해요. 스스로 커팅하고 스스로 화면을 정해서 말로 설명해야하니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었어요."
사고도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화면과 해설 소리가 안 맞았다. 화면이 5초 정도 먼저 도착했다. 화면에서는 이미 슈팅이 나왔는데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설명은 5초후에나 흘러나왔다.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어요. 현장 PD가 쪽지를 써서 줬지요. '경기 상황 설명 말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달라'라고요.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했어요. 두 팀 맞대결의 역사나 올드트래퍼드 소개 등으로요. 그런데 전반 2분에 애매한 상황이 발생했어요. 박지성 선수가 슈팅을 했는데 골대를 때렸거든요. 어떻게 했냐고요?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상황임에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시청자분들이 황당해하셨을 거에요."
이 캐스터에게 첫 현장의 추억은 '감기'였다. 2012년 1월 21일 영국 선덜랜드 스타디움오브라이트에서 열린 선덜랜드와 스완지시티의 경기였다.
"원래 당시 중계 예정은 그 다음날 있을 아스널과 맨유의 경기였어요. 박주영 대 박지성 컨셉이었죠. 그런데 선덜랜드에서 지동원 선수가 뛰고 있었어요. 아스널 맨유 경기 전날 선덜랜드와 스완지시티 경기가 있었어요. 지동원 선수가 그 직전 홈경기였던 맨시티전(1월 1일)에서 버저비터 골을 넣고 관중에게 뽀뽀를 선물 받았어요. 화제가 됐죠. 시간도 맞아떨어졌어요. 그래서 바로 그 경기도 하기로 했어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어요. 비행기를 타고 뉴캐슬 공항으로 갔는데 제 짐이 안온 거에요. 거기에 두꺼운 옷들이 다 있었는데요. 뉴캐슬과 선덜랜드에 있는 내내 추위에 떨어야만 했어요. 특히 그 때가 설날 즈음이었는데요. 한복을 입고 중계를 했어요. 한복이 얇거든요. 바로 감기에 걸렸죠. 다음날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약을 먹었고요. 경기가 있을 때까지 한 마디도 못했어요. 그렇게 조심조심했더니 겨우 목소리가 돌아오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박주영에 대한 추억도 풀어놓았다.
"후반 20분이었어요. 박주영과 안드레이 아르샤빈이 몸을 풀려고 나와있었어요. 일단 아르샤빈이 투입됐죠. 이제 박주영이 나올 차례였어요. 역사적인 박주영 선수의 아스널 리그 데뷔경기였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볼이 안 나가더라고요. 한 5분 정도 플레이가 계속 지속됐어요. 그러더니 로빈 판 페르시가 골을 넣었어요. 1-1이 됐어요. 원래 판 페르시가 빠지고 박주영이 들어가야하는 것이었거든요. 벵거 감독은 판 페르시를 다시 뛰게 하더라고요. 박주영 선수는 다시 벤치로 왔죠. 결국 박주영 선수는 후반 38분인가에 나왔어요. 활약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죠. 조금 아쉬웠어요."
참고로 그 경기는 박주영에게 있어 아스널 소속으로 뛴 처음이자 마지막 프리미어리그 경기였다.
베테랑 박 위원과 이 캐스터와 달리 홍 아나운서에게 이번 경기는 첫 현장 경험이다. 영국에 온 것 자체도 처음이란다. 홍 아나운서는 인터뷰가 있던 시간에 바로 영국에 도착했다. 예정되어있던 방송 때문이었다.
"첫 출장이에요. 영국에 온 것 자체가 처음이에요. 금요일 밤에 와서 경기만 보고 월요일 다시 돌아가게 됐네요. 3일만 잇어야 해서 속상하기는 해요. 제가 진행하는 'EPL팔로워' 촬영을 이곳에서 하게 됐어요. 현재 짓고 있는 뉴화이트하트레인 신축 구장 현장에서 하는데요. 경기하기 전에 현장 소식을 많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태극기의 추억 그리고 25개월
태극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5년 9월이었다. 런던 화이트하트레인. 토트넘과 크리스탈팰리스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손흥민은 토트넘 소속으로 첫 리그골을 기록했다. 그 직전 유로파리그에서 골을 넣기는 했지만 리그골의 의미는 남달랐다. 2층에서 중계하고 있던 이 캐스터와 박 위원은 기쁨의 샤우팅을 했다. 그리고 태극기를 들고 흔들었다. 화이트하트레인에 있던 토트넘 관중들이 이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쳤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박위원은 이 날을 잊지 못했다.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뭉클하기도 하고, 감동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중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경기가 끝나고 토트넘 팬 한명이 왔다. 태극기를 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자기는 오늘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기꺼이 태극기를 선물했다. 그러면서요. 그때 '손흥민을 비롯해서 한국 선수들이 대단한 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캐스터도 말을 받았다.
"저도 그 경기 이후에 중계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요. 현장에서 중계를 하다보니 선수들의 열기와 열정이 제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동시에 저도 더 열정적으로 중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열정을 다 쏟지 않으면 선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제 중계 인생의 변곡점 중 하나에요."
25개월만에 다시 현장 중계에 나선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있을까.
박문성 위원의 눈은 웸블리 그리고 손흥민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을 궁금해했다.
"일단 한국 TV로서는 처음으로 웸블리에서 프리미어리그를 현장 중계를 하는 것이에요. 웸블리는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에요. 이곳에서 중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설레요. 동시에 주인공은 토트넘과 리버풀 선수들이에요. 물론 그중에서도 저희 채널을 시청해주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손흥민 선수를 중점적으로 보겠죠. 이번 경기에서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고 싶어요. 25개월전에 손흥민은 토트넘 팬들에게 '시작하는 선수'였어요. 이제는 어떻게 달라졌을지요. 아 또 하나. 웸블리 징크스에 대해 궁금해요. 웸블리와 화이트하트레인의 차이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
이재형 캐스터는 '내려놓음'을 이야기했다.
"25개월전 중계를 통해 많이 성장했어요. 이번에도 성장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내려놓음도 생각할 겁니다. 더 버리고 더 내려놓겠다는 것이죠. 중계의 주인공은 경기와 선수들이에요. 현장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재형 캐스터에 중점을 찍는 것이 아닌 현장을 잘 전달하는 것에 무게중심을 싣고 싶어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이번 중계의 목표입니다."
홍재경 아나운서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이재형 선배님과는 반대로 생각을 해야할 것 같아요. 채워야할 것들이 많아요. 현장에서의 열기와 열정을 느끼고 채웠으면 해요. 내일 촬영에도 재미있는 소스를 많이 만들어서 축구팬분들께 신선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열정을 바탕으로 좀 더 좋은 방송으로 보답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축구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바로 한국 축구였다. 영국까지 왔지만 결국 한국 축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번 현장 중계를 통해 한국 축구 발전에 힘이 될 만한 것들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 위원은 반성부터 입에 올렸다.
"일단 저희를 포함한 기존 방송국들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한국 축구 경기력에 대한 부분이야 선수들과 팀이 책임을 지고 이끌어나갈 부분이고요. 방송국은 한국 축구를 좀 더 매력적인 상품답게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고 더 가다듬어야 해요. 지금 방송국들은 이런 노력이 부족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온 이야기가 '스토리'였다.
"이곳 중계를 보다보면 '스토리'가 확실하게 있는게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보죠. 연패 중인 팀이 있어요. 골을 허용했죠. 카메라는 실점한 감독을 비춥니다. 괴로워하고 있죠. 그리고 난 뒤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는 '굳은 표정'의 단장 혹은 구단주를 잡죠. 카메라로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이 감독을 어떻게 할 거냐'. 경기 자체의 템포나 경기력을 떠나서 중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축구 자체를 이해하고 스토리 라인을 잡는거죠. 우리 축구 중계도 이런 이야기들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경기. 현장에서 중계하면서 이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많이 배워나갈려고 해요."
이재형 캐스터는 '열정과 진심'을 받아가겠다고 했다.
"다시 열정과 에너지를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추어 축구, 유소년 축구 중계를 하게 될 거에요. 그 때 이번에 받은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거에요. 유소년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라도 더 부르고요. 더 잘한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 선수들과 선수들의 부모님들, 지도자분들도 힘을 얻을거에요. 한국 축구 발전에 캐스터로서 작인 힘을 보태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홍 아나운서는 자신이 맡는 SNS 메신저 역할을 이야기했다.
"일단 이번 현장 중계에서는 제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아요. 중계는 이재형 선배님과 박문성 위원님이 하시고요. 저는 경기 전에 있을 EPL팔로워 말고는 별로 없어요. 그래서 경기 전후 회사의 SNS계정을 통해 현장의 소식을 전할 예정이에요. 작지만 그런 활동들을 통해 손흥민 선수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현장 분위기를 팬분들께 잘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박 위원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국 축구를 위한 호소였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
"이번에 와서도 또 한 번 느꼈어요. 중계에 앞서서 첼시와 로마의 챔피언스리그도 f는데요. 우리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축구가 대표팀을 둘러싸고 현재 고통스럽고 비판도 많이 받고 있어요. 어려운 때에요. 잘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책임을 질 것은 책임지고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표팀은 그렇고요.
여기에 오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도 주말에 경기를 할 건데라는 거였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매 주말 많은 사람이 모여서 축구를 보고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우리는 대표팀만을 바라보다보니까 월드컵이 열리는4년에 한번만 축구를 즐긴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혹은 A매치가 있을때만 관심을 두잖아요. 여기는 매 주말마다, 챔스가 열리면 주중마다 정말 많은사람들이 자기팀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 팀에 대해서는 비판도 하고요. 복합적인 감정들이 계속 소비하고 있어요.
왜 우리는 4년에 한 번 있는 월드컵으로만 축구를 이야기할까요. 분명히 우리가 살고있는 동네에도 우리의 팀이 있는데요. 우리의 리그도 있고요. 바로 K리그지요. 그 팀을 그 리그를 계속 이야기하면 좋을텐데요. 여기 이곳 사람들은 자기 팀, 2부르기든 3부리그든 자기팀을 이야기하고 살아요. 대표팀이나 월드컵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여요. 그래서 축구를 더 재미있어 하는 거 같아요.
우리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4년에 한 번 어디 나가서 축구를 좋아하는 것보다 우리 동네 팀을 좋아하는 거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를 보시는 분들도 많지만 보시면서도 우리주변에도 우리의 리그와 우리의 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회가 되는 그날까지 저도, 저희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