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한국전력 직원이니 못하면 다시 돌아가겠지?"
김철수 한국전력 감독은 비아냥 속에 지난해 4월 지휘봉을 잡았다. 선수로, 코치로 쌓아온 20년 이상 '한전맨의 삶'은 감독의 문 앞에선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잘 안 풀려도 믿는 구석이 있겠지. 그 사람 한전 직원이잖아." 오히려 그를 깎아내리려는 음해성 시각의 양분이 됐을 뿐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감독은 책임지는 자리다. 팀을 못 만들면 모든 걸 내려놓을 각오"라는 김 감독의 다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자신의 일생을 모두 바친 팀. 그래서 진심을 다 해 사랑하는 팀, 한국전력을 위해 김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결국 성적이다. 프로의 생리다. '초보 감독' 김철수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주변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가 택한 건 '소신의 길'이었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후순위인 29번 참가선수 펠리페를 품었다. 쏟아지는 의구심. "도대체 뭘 본거야?" 김 감독은 그냥 웃었다. "한번 보시죠."
그가 택한 소신의 길은 '가시밭 길'이기도 했다. 액운이 덮친 듯 줄부상이 이어졌다. 시즌 개막 전 주전 세터 강민웅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핵심 레프트 서재덕도 시즌 극초반 쓰러졌다. 이어 윤봉우도 신음했다. 여기에 시즌 전 야심차게 영입했던 '베테랑 세터' 권영민은 들쭉날쭉한 볼 배급으로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펠리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 감독이 택한 건 '맹훈련'이었다. 기존 두 차례 진행하던 훈련을 새벽, 오전, 오후, 야간 총 네 차례로 늘린 극한의 프로그램. 그 와중에 김인혁마저 부상을 했다. 이를 두고 또 한 차례 비판의 칼바람이 불었다. "시즌 중 강훈련은 선수들에게 독이 된다." 한 술 더 뜬 말들도 흘러나왔다. "역시 초보 감독이라 감이 떨어진다." "무조건 몰아붙이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제 아무리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질타의 연속. 김 감독은 우두커니 서서 정면으로 질풍을 맞았다. 그리고 버텼다. 타협은 없었다.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랑하는 팀 한국전력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뚝심'으로 보여줬다. "누가 뭐라고 해도 버텨야 한다. 우리 선수들을 믿기에 자신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였다. 한국전력이 달라지고 있다. 빛 보단 어둠에 가까웠던, 그래서 활기 보다는 정체가 익숙했던 팀, 한국전력. 주축들이 대거 쓰러졌지만 전광인은 여전히 날아오르듯 뛴다. V리그의 감을 잡은 펠리페는 연신 포효한다. 무명에 가깝던 안우재 이재목 공재학이 전위에서 춤을 추고, 리베로 김진수 오재성은 매 경기 액션 영화를 찍는다. 신예 세터 이호건은 제법 호기롭게 지휘를 한다. 이 광경을 김 감독이 팔짱 낀 채 지켜본다.
비아냥 속에 시작했던 김 감독의 한국전력. 2017년 마무리는 환호와 함께 했다. 지난달 31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의 2017~2018시즌 도드람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대0(25-21, 25-23, 26-24) 승리를 거뒀다. 벌써 4연승이다. 리그 순위는 3위. 경기 후 김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천=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2017~2018시즌 도드람 V리그 전적(12월31일)
남자부
한국전력(10승10패) 3-0 대한항공(11승9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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