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네요."
남자 펜싱 사브르의 '현재' 에이스는 구본길(29·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세계랭킹(2위)도 그렇고 펜싱 그랜드슬램의 업적도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지난 20일 사브르 개인전에서 우승을 따내며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3연패까지 달성했다. 하지만 구본길은 3연패를 따낸 뒤 울먹였다. 결승전 맞상대였던 오상욱(22·대전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오상욱이 금메달을 따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자신이 그 기회를 꺾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던 것. 그렇다고 정 때문에 일부러 져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계 최강 펜서로서의 자존심이, 뿌리박힌 스포츠맨십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본길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었다. "단체전 때는 정말 개인전 때보다 더 모든 걸 쏟아 붓겠다. 꼭 금메달을 따서 후배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고. 그리고는 오상욱에게도 말했다. "단체전에서 금메달 걸어줄게. 형만 믿어, 형만".
구본길은 자신이 한 말을 끝내 지켜냈다. 23일 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 플래네리홀에서 열린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이란을 45대32로 꺾는 과정에서 15점을 책임졌다. 2번과 4번, 7번째로 피스트에 올라 자신의 몫을 다 한 것.
구본길은 승리소감으로 가장 먼저 "개인전 때 후배한테 약속했던 것을 지킬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사실 개인전 결과로 인해 부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나보다 상욱이가 더 부담됐을텐데 잘 뛰어줬다. 내가 처음에 힘들게 갔는데 오히려 상욱이가 잘 뛰어줘서 나도 뒤에 잘 뛸수 있게 해줬다. 상욱이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구본길은 사실 이날 초반 등장 때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인전 금메달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구본길은 "처음에 헤맸는데, 모든 사람들이 너무 급해서 내 스텝이 안나온다며 부담 갖지 말고 내 게임을 하라는 말을 해줬다. 그래서 기합도 평소보다 많이 넣고. 더 화이팅하면서 긴장을 많이 풀 수 있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구본길은 남자 사브르가 세계 최강이 된 비결에 대한 질문에 "우선 다른 나라에 비해 훈련량이 많다. 2~3배 정도 많은데, 그러면서도 선후배간 그리고 코칭스태?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워낙 잘 통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상태에 대해 조언해주며 같이 실력이 향상된 덕분에 단체전에 강한 것 같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구본길은 이번 대회 한국의 첫 2관왕에 대한 소감을 묻자 "사실 2관왕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오직 단체전 금메달을 따서 내가 한 말을 지키는 것만 신경 썼다. 그간 개인전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이제는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힘들었다"며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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