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다. 내가 자신 있으면, 우리 선수들도 자신 있다."
2019년 프랑스여자월드컵의 해, 새해 첫 대회인 중국 4개국 대회(17~20일) 출전을 앞두고 7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만난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은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나직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에선 힘이 느껴졌다.
1990년대를 호령한 국가대표 수비 레전드 출신답게 웬만해선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지옥의 대진을 받아든 순간에도 그는 담담했다. 1차전, 개최국인 '최강' 프랑스(6월 8일), 2차전 아프리카 최강 나이지리아(6월 12일), 3차전 북유럽 강호 노르웨이(6월18일)와의 3연전 로드맵을 받아든 후 그는 "2015년 캐나다월드컵보다 조편성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자신 있으면 우리 선수들도 자신 있다. 축구는 모른다. 결과가 어떻든 미리 '쫄아서' 나가는 건 원치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여자월드컵 현장 미리 돌아보니…
윤 감독은 2000년대 이후 남녀축구를 통틀어 최장수 감독이다. 윤 감독은 2013년 12월 여자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2015년 캐나다월드컵에서 12년만의 월드컵 진출, 사상 첫 월드컵 16강 쾌거를 이끌었다. 2017년 4월 '평양대첩'에서 '최강' 북한을 누르고 조1위 요르단아시안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지난해 요르단아시안컵에서 프랑스월드컵 진출을 확정하며 사상 첫 2연속 월드컵 본선행 역사를 썼다.
지난해 12월 조추첨 직후 윤 감독은 현지 실사 일정을 이어갔다. 개막전이 열리는 파리생제르맹 홈구장 '파르크데프랭스'에서 네이마르, 음바페가 사용하는 라커룸, 웨이트트레이닝룸 등 세계 최고의 시설들을 돌아봤다. 이후 2차전이 열리는 그르노블과 3차전이 열리는 랭스를 답사하며 동선과 환경을 점검했다. 윤 감독은 "선수단 이동경로와 똑같이 파리에서 그르노블로 고속열차 TGV를 타고 이동했다. 3차전이 열리는 랭스도 파리에서 열차로 이동했는데 위도가 높아서인지 그르노블보다 기온이 낮더라. 2-3차전 기온차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랭스에서 남자 A대표팀 출신 석현준을 조우한 이야기도 귀띔했다."훈련장에 나온 석현준을 만났다. 랭스 운동장 하이브리드 잔디 상태가 아주 좋았다. 석현준도 한국의 3차전이 노르웨이전이 홈구장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 서로 응원한다고 했다."
5월 초부터 유럽 현지 적응훈련을 치를 전지훈련지도 답사했다. 윤 감독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등 몇 군데를 돌아봤다. 러시아월드컵 때 남자대표팀의 레오강 캠프, 2010년 남아공월드컵때 허정무호가 썼던 캠프도 돌아봤다. 훈련시설은 모두 좋았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스위스 등과 연습경기를 치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연습경기가 성사될 경우 전훈지로 스웨덴도 고려하고 있다.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팀 컬러가 비슷하다. 또 박지성 본부장을 연결고리로 영국, 스페인 등도 후보군에 올려놓았다"고 설명했다.
죽음의 조, 지옥의 대진에 대해 윤 감독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남은 기간에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만 생각한다"고 했다. "개막전은 우리도 프랑스도 모두 부담스러울 수 있다. 4년전 월드컵의 경험이 힘이 될 것이다. 팬들과 언론도 큰 관심일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슬기롭게 이겨내면 2-3차전을 긍정적으로 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다. 축구에서 결과는 정해진 것이 없다. 우리 하기 나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 감독은 언제나 정공법을 택하는 지도자다. "2015년 캐나다월드컵 직전 세계 최강 미국과 평가전을 치렀다. 미국의 출정식에서 제물이 될 수 있고,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며 평가전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비기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 개막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우리를 1승 제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지혜롭게 넘긴다면 2, 3차전에서 좋은 효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여자축구도 그만큼의 힘은 있다고 믿는다.
▶나는 한국 여자축구의 저력을 믿는다
지난 6년간 '아버지 리더십'으로 윤덕여호를 굳건히 이끌어온 윤 감독의 믿음은 확고했다. "우리 여자축구는 힘든 환경을 이겨내 왔다. 2017년 평양에선 김일성경기장 5만 관중 앞에서 북한을 눌렀다. 어느 하나 쉬운 길은 없었다. 하지만 항상 나는 믿음이 있다. 우리 선수들은 저력이 있다. 여태까지 잘 이겨온 힘을 월드컵 무대에서 발휘해줄 것이라 믿는다."
한국 여자축구의 저력을 재차 묻자 윤 감독은 "우리 여자축구 환경은 축구 선진국에 비해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에게는 절실한 의지가 있다. 캐나다월드컵 이후 4년간 우리 선수들은 분명히 성장했다 그런 선수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면서 팀을 이끌어갈 것이다. 12년만에 본선에 올랐던 2015년보다 더 당당하게 싸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4년간 여자축구 에이스들은 안팎으로 성장했다. 해외리그를 경험하고, 인정받는 선수들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윤 감독은 "지소연이 첼시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쳐왔다. 조소현은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뛰었고, 올해는 잉글랜드 웨스트햄에서 뛴다. 이민아는 지난해부터 일본 고베아이낙에서 활약했고, 전가을은 호주, 미국리그를 경험했다"면서 "이 선수들 스스로 한국 여자축구를 위한 책임감을 강하게 갖고 있다. 대표팀은 이들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후배들은 언니들을 보고 꿈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을 보여주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여자축구의 희망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감독의 시선은 당장의 월드컵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 걸출한 선수들이 이끌어갈 여자축구의 빛나는 미래를 노래했다. "어학도 잘하고, 국제경험도 풍부한 이들이 장차 협회에서 행정가로도 일하고, 지도자로도 일하면서 여자축구 선수들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세대들이 남자축구 현장에서 해온 역할들을 이제 이 선수들이 여자축구를 위해 해주길 바란다. 나는 늘 그 꿈을 꾸고 있다."
▶'4년 전 초심으로…' 프랑스월드컵 자신 있게 준비하겠다
이날 인터뷰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윤 감독은 축구회관 1층에 전시된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보고 왔노라고 했다. 승리의 역사를 되새겼다. 프랑스월드컵은 베오그라드유니버시아드 우승 멤버인 1988라인(조소현, 전가을, 김도연 등), U-20 월드컵 3위 1990라인(지소연, 임선주, 김혜리, 이민아 등 ), U-17 월드컵 우승을 이끈 1994라인(여민지, 장슬기, 이금민, 이소담 등) 소위 '황금세대'가 함께할 마지막 월드컵이다. 윤 감독은 "월드컵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88년생, 90년생들에게 이번 대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이라는 절실함이 경기장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프랑스여자월드컵 8강 목표를 언급했다. 윤 감독은 "지난 대회(16강)보다 목표를 높이 잡아야 한다"고 긍정했다. "중요한 것은 매경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2015년보다 조편성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 없는 표정을 짓고 싶지 않다. 자신감은 철저한 준비에서 나온다. 선수들에게 배짱있게 뛸 준비를 하게 하겠다.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겠다"고 다짐했다.
새해 첫 대회, 중국 4개국 친선대회(한국, 중국, 루마니아, 나이지리아)는 월드컵에 함께할 선수를 가리는 첫 시험대다. 17일 루마니아와의 첫경기에서 3대0으로 완승하며 기분좋은 첫승을 신고했다. 윤 감독은 "선수들에게 초심을 이야기했다. 4년전 그 절실했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음의 장신구, 허영을 내려놓고 정말 진정한 모습, 월드컵에 처음 나설 때의 절박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드컵의 자격'도 분명히 밝혔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 경기력이 최우선이다. 소속팀에서의 경기력을 우선시하되 대표팀에서 잘 화합하는 선수를 뽑겠다. 개인적 능력을 갖춘 팀플레이어를 원한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뭐든 하면 된다'는 돼지의 해, 윤 감독의 새해 소망을 물었다. 먼저 축구인으로서 벤투호의 아시안컵 우승을 바랐다. "남자대표팀이 2018년 첫 대회인 아시안컵에서 잘해주고 있다.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오랫동안 우승을 못했다. 좋은 경기력으로 꼭 우승해, 새해 한국축구의 첫 단추를 잘 끼워줬으면 좋겠다." 최장수 여자축구 감독으로서 가장 절실한 프랑스여자월드컵 소망이 이어졌다. "올해는 여자축구 월드컵의 해다.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더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길 바란다. 우리 선수들은 팬들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잘 준비하겠다." 축구회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