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만 해도 강축의 후착 찾기 경주에서는 축과의 연대(개인적 친분, 훈련지 근접, 기수, 학연 등등)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다. 인지도 최상위자인 축이 인지도 중하위인 연대 선수를 마크로 달아주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기 때문. 선수들도 어느 정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강축이 친분 선수를 마크로 붙이고 들어오는 경주는 전개 자체가 깔끔하고 기분 좋다. 물론 마크로 달아준다고 해서 모든 협공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줄서기의 가능성과 삼복승 선택의 토대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선발, 우수급의 축선수가 인지도를 배제한 채 친분이 있는 누군가를 마크로 붙여주고 동반입상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시도 차제가 현저하게 줄었다. 시대의 변화였다.
혜성 특급 신인의 등장
라인 흐름이 점차 퇴색하기 시작한 건 터보 엔진을 장착한 신인들의 대두와 맞물린다. 과거의 신인들은 신인이면 신인답게 타야 한다는 관념에 축 선수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힘을 다해 경주를 주도했었다. 재거나 따지지 않고 치고 나서는 신인들은 상대하기 쉬운 만큼 축 선수의 의지가 경주에 강하게 반영될 수 있었다. 즉, 축 선수가 친분이나 라인 선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그것도 선발, 우수급에서 특선급 톱클래스 수준의 선행력을 보이는 신인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라인의 종말, 나부터 살고 보자
21기 정하늘, 22기 양승원은 신인 중심의 경주 흐름에 큰 틀을 제공한 대표 선수다. 선발급에서 데뷔전을 치른 정하늘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다. 6경주 연속으로 선행을 했는데 200m 평균 시속이 11초 35. 따라가다가 다리가 풀려버리는 상황에 놓인 선발급 선수들은 변화의 파도에 그대로 휩쓸렸다. 양승원은 앞선 정하늘의 계보를 이은 후속 주자. 선발, 우수급의 강자들을 상대로 딴 생각을 못 하게 위협하며 본인 전법 위주의 경주를 만들어냈다. 결국 경주의 중심은 기존 강자가 아닌 힘 좋은 신인 선수들로 바뀌었고, 기존 강자의 입장에서 신인이 본인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크게 고전할 수 있는 판국에 라인까지 생각할 여력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누가 누가 잘하나
이런 상황에서 신인이 강자를 인정하는 기준이나, 기존 강자가 마크 자리를 내어주며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했다. 결국 종합득점이 그 역할을 하게 됐다. 과거 각 선수별 득점이나 인지도를 무시하고 강자의 입맛에 따라 줄을 서던 전개는 확연히 사라지고 철저히 실력 위주로 자리를 잡는(그 기준은 종합득점) 현상이 펼쳐졌다.
이기려면 뭉쳐야 한다
각 급별 결승전이나 편성 자체가 혼전이라면 종합득점과 인지도를 배제한 연대 협공이 공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사실 기량과 인지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구도에서는 본인이 살기 위해선 아군과 협공을 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때리면 지켜줄 선수가 필요하고, 뒤를 막으면 끌어줄 선수가 필요한 이치. 객관적인 기량에선 3~4위권으로 밀리는 선수가 연대 선수와의 협공을 통해 상대적으로 가장 강한 선수를 제압하는 모습도 결승전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까닭이다.
내 뒤를 따르라
특선의 누구나 인정하는 S급 강자들의 경우 평일 경주에서도 지역적인 연대를 펼칠 수 있다. 수도권의 정종진과 정하늘, 충청권의 황인혁과 김현경, 경남권의 이현구와 성낙송 정도의 선수들은 기량으로 흐름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이다. 종종 과감한 연대플레이를 펼치며 나머지 도전선수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경륜뱅크의 배재국 예상팀장은 "경륜은 이제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 체제다. 신인과 선배의 상하관계, 친분과 연대를 떠나 실력이 최우선이다. 선수 간 라인, 연대에 의미를 두는 누가 누구를 챙기냐 하는 추리 방식은 이제 과거의 산물이다. 축 선수가 이 편성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굴 가장 경계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하다. S급 강자가 쉬운 편성을 만나거나 선수의 기본 성향이 라인 경주를 고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량과 인지도에 따른 줄서기로 대부분의 경주가 시작된다. 혼전 구도의 경주나 결승전이라면 객관적인 기량에서는 밀리지만 라인 협공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의 활약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전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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