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지난 9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 양상문 감독은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취재진의 경기 사전 인터뷰를 앞두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는 "사전 인터뷰에 앞서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 연락했다"고 말했다. 부진한 팀 성적에 대해 팬들에게 사죄하고 극복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스스로의 거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어했다.
당시 양 감독은 심적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한 뒤 선수단 버스로 향하던 양 감은 일부 성난 팬들과 마주쳤다. '양상문 아웃'을 외치는 이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롯데 경기를 보기 위해 구입한 입장권을 집어던지는 팬들도 있었다. 꼴찌 추락 뒤 절치부심하고 있던 양 감독에게 이 사건은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따로 만난 양 감독은 끄집어내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안팎의 인신공격성 비난에 괴로워 하는 가족, 지인들 생각을 떠올릴 땐 감정에 복받쳐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결과에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감독의 숙명 속에서 그는 그저 미소를 짓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양 감독은 "주변에선 포기하라는 말을 하지만, 나를 믿고 응원해준 이들을 생각하면 매 경기 죽는다는 각오로 덤비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양 감독은 "팬들의 비난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속상하고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롯데-부산 야구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나. 그래서 내가 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구 인생 황혼기인 내가 무슨 영화를 바라겠나. 그저 롯데가 좋은 결실을 맞게 도우고 싶을 뿐이고, 그거면 되는데…"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럼에도 남은 전반기 1주일 동안 롯데에 반전은 없었고, 결국 양 감독은 스스로를 내던지는 쪽을 택했다.
안팎의 인신공격성 비난과 달리 야구장 안에선 양 감독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경기 전 더그아웃 부근에 모여든 팬들이 "힘내세요!", "양상문 화이팅!" 등의 응원을 보낼 때마다 양 감독은 속내를 감춘 채 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경기를 준비하기도 바쁜 시간에 스스로 관중석 앞으로 찾아가 공인구에 사인을 해 어린이 팬에게 건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자존심 세기로 소문난 '부산사나이'지만 팬들 앞에선 누구보다 겸손했고, 따뜻했다.
양 감독은 떠나는 길에도 팬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는 "큰 목표를 갖고 롯데-부산 야구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부임했다. 전반기 부진한 성적에 죄송스럽고 참담하다. 사랑했던 팬들께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 발버둥 쳐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지금은 내가 책임을 지는게 팀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야구장에 와주신 팬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됐다"며 "(잘해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특히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어린이 팬의 얼굴이 마음에 남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롯데-부산 바보' 양상문은 이렇게 쓸쓸히 퇴장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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