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21일 밤, 광주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남자자유형 400m 결승, 중국의 쑨양이 3분42초44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호주의 맥 호턴이 3분43초17로 은메달, 이탈리아 가브리엘 데티가 3분43초23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짜요!짜요!" 중국 팬들의 함성이 광주 남부대 수영장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쑨양이 손가락 4개를 번쩍 들어올리며 2013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이 종목 사상 첫 4연패를 자축했다.
그러나 더욱 극적인(?) 사건은 레이스 후에 일어났다. 남자자유형 400m 시상식에서 호주의 맥 호턴이 시상대에 오르기를 거부한 것. 시상대 아래 선 호턴은 먼산을 바라보며 '4연패 챔피언' 쑨양을 외면했다. '도핑 선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시상식 후 사진 촬영에서도 쑨양과 거리를 뒀다. 쑨양과 동메달리스트 데티가 어색한 사진 촬영을 했다. 현장에선 FINA고위 관계자가 호주대표팀 감독을 급히 호출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 장면은 이날 '미국 수영여제' 케이티 레데키가 자유형 400m에서 호주의 10대 아리안 티트머스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준 것보다 더 뜨거운 이슈였다. 세계 수영계가 발칵 뒤집혔다.
쑨양은 이미 한 차례 도핑 전과가 있다. 2014년 도핑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고, '심장질환 치료를 위해 복용한 약이며, 이 약이 도핑 금지약물로 지정된지 얼마되지 않아 몰랐다'는 입장을 취했다. 쑨양은 겨우 3개월 자격정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약을 처방한 의사도 1년 자격정지에 그쳤다. '트리메타지딘'이라는 이 성분은 이후 대회중 복용이 금지되는 약물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불법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쑨양의 도핑 논란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도핑검사관 앞에서 혈액샘플 병을 깨는 등 도핑 검사 거부 혐의로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세계선수권 현장에서 호주, 미국 선수들이 '병을 깨는 선수'라고 공개 비난했다. FINA가 쑨양에게 단순한 경고 처분으로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FINA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 9월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쑨양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던 호턴은 쑨양의 도핑 의혹을 맹비난해온 '대표 저격수' 중 하나다. 맥 호턴은 리우올림픽 기자회견에 쑨양과 나란히 앉은 자리에서 "우리 종목에서 약물은 절대 안된다"며 반도핑의 의지를 분명히 했었다. 호턴은 이날 시상대에 오르지 않음으로써 쑨양의 도핑 의혹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선수권 출전을 허한 FINA를 향한 항의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쑨양의 4연패를 저지하지 못한 호턴은 경기 후 "아마도 좌절감인 것같다.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수영전문매체 스윔스왬은 호턴이 "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어떤 선수와도 시상대를 나눠가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전했다. 호턴은 동메달리스트 데티에게도 시상대 거부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지만 데티는 "나는 동메달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시상대에 오르고 싶다"며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쑨양은 4연패 후 '나홀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당당했다. 호턴의 시상대 거부와 관련, "호주 선수(호턴)가 내게 불만을 드러낼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나섰다. 쑨양 개인을 무시하는 건 괜찮지만 중국을 무시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상대 거부 사건 이후 미국, 호주, 유럽 등 각국 수영인들과 도핑 전문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BBC, 미국 ABC 등 전세계 주요 언론들도 호턴과 쑨양의 장외 대결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가운데 '호턴이 반도핑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의견과 '무죄추정원칙에 의거, 시상대 거부야말로 오히려 벌점을 받을 행동'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광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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