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팀에 도움이 많이 되는 투수입니다."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 감독은 시시콜콜한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과묵한 지도자다. 선수에 대한 과한 칭찬도, 과한 비난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졸 신인 투수 원태인(19)에게 만큼은 예외다. 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한결 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직접 표현을 하지 않지만 김 감독에게 원태인은 참 고마운 선수다. 고졸 1년 차 신인 투수가 시즌 초인 4월 말부터 선발 전환에 성공하며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줬다.
올시즌 내내 삼성 선발진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시즌 초 구상이 모두 어긋났다. 지난해 신인으로 맹활약 했던 2년차 양창섭이 캠프 때 팔꿈치 수술로 이탈하며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불펜 에이스였던 최충연은 선발 전환에 실패했다. 대졸 2년차 좌완 최채흥도 4월까지만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여기에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두 투수는 또 한번 실패로 돌아갔다. 덱 맥과이어와 저스틴 헤일리는 심한 기복 속에 완주하지 못하고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캠프 당시 구상한 5명의 선발 중 지금까지 끝까지 살아남은 투수는 좌완 백정현이 유일했다.
선발진 완전 붕괴 속에 최악의 상황을 막아준 투수가 바로 최고령 선발 윤성환(38)과 최연소 선발 원태인이었다. 윤성환이야 통산 135승을 달성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 만큼 부활이 놀라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원태인의 약진은 기대 이상이었다. 경북고 3학년이던 지난해 여름 팔꿈치 수술을 하고 실전 등판을 하지 못했던 투수.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웠다. 스피드는 고교 시절보다 덜 나왔지만 원태인은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제구를 곁들여 7월까지 꾸준하게 선발 투수의 몫을 해냈다. 안정감에 있어 외국인 두 투수보다 훨씬 나은 맹활약이었다. 실제 원태인은 7월까지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이었다. 외국인 두 투수의 기복 때문에 시즌 내내 속앓이를 한 김한수 감독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투수(원태인)가 훨씬 더 낫다"며 이례적인 칭찬을 할 정도였다.
그랬던 원태인이 올시즌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프로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프로 입단 하자마자 맡게 된 풀타임 선발. 체력적 한계에 봉착했다. 8월 들어 3경기 연속 대량 실점으로 무너졌다. 2점대 방어율이 어느덧 4점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다 잡았던 신인왕도 불투명해졌다.
김한수 감독 역시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래도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체력적 배려를 해주는 것 뿐이다. 김 감독은 "(태인이의) 구위가 떨어진 건 맞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쉴 수 있도록 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그 어떤 힘겨운 행보를 보이더라도 원태인은 올시즌 이미 팀을 위해 해줄 만큼 해줬다. 고졸 신인 투수에게 중요한 것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 그리고 향후 10년 미래다. 김한수 감독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닝을 버텨줬다. 팀에 도움이 많이 되는 투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태인은 이런 김 감독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었다. 참 좌절스러운 힘든 상황을 딛고 반등의 희망을 던졌다. 28일 광주 KIA전에서 국내 최고 좌완 양현종과의 맞대결에서 인상적 투구로 맞섰다. 선발 6이닝 동안 홈런 포함, 6안타 2볼넷 4탈삼진 4실점 하며 시즌 8패째(4승)이자 9일 대구 롯데전 이후 3연패에 빠졌다. 비록 패했지만 3연속 최악의 피칭 후 되찾은 투구 밸런스였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5㎞까지 나왔다. 1회 2사 후 터커에게 2루타를 허용한 이후 10타자 연속 범타행진을 이어가며 4회까지 단 1안타 무실점으로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비록 승리하지 못했지만 원태인은 신인왕 레이스의 마지막 희망의 여지를 남겼다. 가장 큰 위기의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신 다시 한번 역경을 딛고 일어선 원태인. 신인왕 등극 여부를 떠나 그는 김한수 감독의 따뜻한 시선 속에 삼성의 10년 미래를 책임질 투수로 차곡차곡 성장중이다.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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