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23·레드불 잘츠부르크)은 성인 선수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황희찬은 '황소'라는 별명답게 중고교 시절 시원시원한 돌파와 파워풀한 슈팅으로 'NO1'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손쉬운 패스도 자주 미스를 하고 몸싸움을 즐기는 성향 때문에 '투박하다' '축구 IQ가 낮다'는 이미지를 동시에 얻었다. 황희찬의 국가대표팀 A매치 경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거침없는 측면 돌파와 공격자 파울, 그리고 패스 미스다.
올 시즌 소속팀에선 분명 이전과는 다른 퍼포먼스를 펼친다. 돌파해야 할 때와 패스를 찔러넣어야 할 타이밍을 깨우친 모습이랄까. 기회를 포착할 경우 양발, 그리고 공이 닿는 부위를 가리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어시스트를 배달한다. 케빈 더 브라위너(26·맨시티) 등 유럽의 특급 도우미들의 플레이를 빼닮았다. 10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써 컵대회 포함 9도움째를 기록했다. 경기당 1개 꼴이다.
18일(한국시각) 홈구장인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헹크(벨기에)와의 2019~2020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E조 1차전에선 '야성미'와 '도우미', 두 가지 매력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전반 34분, 키가 한 뼘은 더 큰 상대 수비수 세바스티앙 드바스트를 집요하게 공략한 끝에 결국 공을 탈취해 엘링 홀란드(19)의 두 번째 골을 도왔다. 45분에는 '숟가락으로 떠먹여줬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알맞은 왼쪽 크로스로 홀란드의 해트트릭을 이끌었다. 홀란드는 발만 갖다 댔다.
앞서 36분 데뷔골 상황에선 빠른 상황판단과 순간스피드가 빛났다. 즐라트코 유노조비치가 문전 쪽으로 한 번에 연결해준 공을 재빠르게 잡아 달려나온 골키퍼 왼쪽 하단으로 툭 밀어넣었다. 일대일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은 침착성이 돋보였다. 이 골로 손흥민(2014년)에 이어 한국인 최연소 UCL 득점 2위에 올랐다.
황희찬은 후반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상대 진영을 향해 '성난 황소'처럼 내달렸다. 순식간에 수비수 3명을 벗겨낸 뒤 왼발 슛을 때렸다. 선방에 막히지 않았다면 또 하나의 작품이 나올뻔한 장면이다. 전반 스코어가 이미 5-1로 벌어진 터라 후반 경기 양상은 늘어진 감이 있었다. 황희찬이 공을 소유하는 횟수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 와중에도 교체투입한 다카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찌르는 등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며 6대2 대승에 일조했다.
황희찬은 지난시즌 독일 2부 함부르크로 임대를 떠나 부상, 적응 등의 이유로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휴식기에 사비를 들여 축구 강습을 받는 등 끊임없이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올 시즌 노력의 결실을 보고 있다. 그는 경기 후 개인 SNS를 통해 독일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 '훌륭한 성과였다. 계속 이렇게 하자. 엄청난 성원에 감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물론 헹크는 E조의 최약체로 꼽히는 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내달 리버풀 원정 경기가 진정한 시험대다. 지난시즌 유럽을 제패한 리버풀에는 유럽 최고 수준의 센터백인 버질 반 다이크가 버티고 있다. 헹크와는 레벨 자체가 다르다.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팀 감독 입장에선 황희찬이 소속팀 활약을 대표팀에서도 이어나가 주길 바랄 것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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