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여간 홈플러스를 이끌어온 임일순 사장이 13일 회사를 떠난 가운데, 홈플러스의 노사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홈플러스 노사는 부동산 개발 회사에 매각 후 소유권 이전이 완료된 대전 둔산점 직원들의 '고용 보장'과 '위로금 논란'으로 대립각을 세운 상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장기 불황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줄여가고 있는 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용보장 쟁취" vs "시위 빌미 위로금 챙겨"…노사 '팽팽'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에 따르면, 둔산점을 인수한 부동산 디벨로퍼 미래인은 지난 12일 대전시의회에서 홈플러스 노조와 둔산점 전 직원의 고용보장을 확약하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업계에서 '유례없는' 노조와 인수 업체 간의 합의인 만큼, 그 배경과 조건이 관심을 모았다.
올해 말까지 운영 후 폐점되는 홈플러스 둔산점 부지에는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지하 7층 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건립될 예정이다.
노조에 따르면, 양측은 둔산점 폐점 이후 새로 짓는 주상복합에 7000㎡ 규모의 대형마트를 입점시키고, 둔산점 직영 직원 130여명 가운데 법정 정년에 이르지 않은 입사 희망자 전원을 최우선 고용키로 합의했다. 외주·협력업체 직원도 추가 고용이 필요할 경우 우선 채용키로 했다.
조합원은 물론 직영직원과 외주·협력직원, 입점주들까지 구성원들에 대한 보상안도 발표됐다.
폐점 이후 내년 3월 착공 시점에 실직하는 직원들에게 준공 시점(최대 45개월 예상)까지 매달 100만원의 생계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외주·협력업체 직원에게는 일시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입점주들에게는 점포당 최대 25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특히 노조원들에게는 총 1억5000만원의 위로금이 지급된다는 점이 명시됐다.
홈플러스 노조는 "이번 합의는 폐점 후 대형마트 입점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실현한 보기 드문 사례"라며 "노조가 나서 직영 직원들뿐만 아니라 외주·협력업체 직원들의 고용대책까지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홈플러스 사측은 "전직원 고용보장을 수차례 약속한 바 있는데도, 노조가 이를 믿지 못하고 홈플러스가 아닌 다른 회사(미래인)로부터 고용보장을 받는다는 것"이라며, "회사와 협의 없이 진행된 사안이라 매우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특히 "매각 반대를 주장하며 집회를 이어가던 노조가 '매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매수자와 비공식 협약을 통해 돈을 받아 노조원들에게만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해가 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입장이다. 사측은 "홈플러스 노조가 점포 매각을 철회시키기 위해 시의회를 통해 일반상업지구의 용적율을 낮춰 홈플러스 점포 매수자의 수익성에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도시개발 조례 개정을 추진해왔다"면서, "실제 홈플러스 안산점의 경우 해당 조례 개정에 성공해 일반상업지구 용적률 1100%를 주상복합 건축물에 한해 400%로 하향시킨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도 이러한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주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 확인 후 사태를 원만하게 매듭지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실적 부진·리츠 실패로 인한 점포 매각으로 마찰 심화
이러한 노사 갈등은 홈플러스의 잇단 점포 매각이 그 배경이다.
홈플러스 노사는 지난해부터 매각으로 인한 점포 폐쇄와 고용 안정 문제로 날세운 공방을 계속해왔다. 홈플러스가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현금 확보를 위해 자산유동화에 나서면서, '대량 실직사태'를 우려한 노조와의 마찰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홈플러스의 2019회계연도(2019년 3월~2020년 2월)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4.7% 감소한 7조3002억원으로, 특히 당기순손실은 5322억원으로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전국 매장을 리츠(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추얼펀드)로 만들어 상장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홈플러스는 안산, 둔산, 탄방, 대구점 매각을 진행하게 됐다.
이에 노조는 "홈플러스 운영사 MBK파트너스가 인수 차입금 및 이자 상환 비용을 점포를 매각해 해결하려는 행위"라며, "알짜매장만 골라 팔아치워 자기 배만 불리려는 MBK의 쪼개기매각, 분할매각을 완전히 주저앉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1조 3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매각대금을 직원에게 투자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무기계약직 사원 1만4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상생 노력을 해왔다는 점에서 노조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며, 강경한 대응 태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사갈등 와중에 임일순 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돌연 퇴임을 결정하면서 수장 공백 사태가 발생한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현재 신임 대표이사 사장 후보를 물색해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노사 대립은 양측에서 이미 감정적 마지노선을 넘은 것 같다"면서, "홈플러스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던 만큼, 이번 사안 또한 업계에 전례로 남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내부 갈등 봉합이 시급한 상황에서, 임일순 사장이 퇴임하면서 생기게 된 리더십 공백을 어떻게 채울 지에도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