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숙명의 한-일전을 앞두고 벤투호를 흔든 것은 때 아닌 '소통' 논란이 이었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의 작심 발언이 시작이었다. 울산은 한-일전에 무려 7명의 선수가 차출됐다. 그 중에는 홍 철도 있었다. 홍 철은 최근 몸상태가 좋지 않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홍 감독은 16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를 앞두고 "홍 철이 몸이 좋지 않다. 본인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홍 철의 몸상태를 우리가 가장 잘 아는만큼, 협의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후 '소통' 논란은 제대로 불이 붙었다. 대표팀에 3명의 선수를 보내는 박진섭 FC서울 감독도 "이렇게 많이 나가는 건 처음이다. 대표팀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K리그와 소통한 적이 없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이력과 성향을 붙여, 부정적인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에서 한명이 추가로 차출된 것을 들어 '벤투 감독의 울산 길들이기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소통은 중요하다. 과거 대표팀과 K리그는 선수 차출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벌이며, 모두 상처를 입은 흑역사가 있다. 대표팀은 대표팀 차출이라는 권리만 요구할 수 없고, K리그도 대표팀 차출이라는 의무도 저버릴 수 없다. 소통은 이 권리와 의무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2018년 부임 후 이같은 노력을 게을리한 벤투 감독의 행보는 분명 아쉽다. 더욱이 이번 차출은 말그대로 K리그의 '대승적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5일 이상 자가격리가 필요한 경우, 대표 차출을 거부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준 상황에서도, 차출에 응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 명단 발표일 "K리그에 감사하다"는 말한마디 남기지 않은 벤투 감독을 향해 K리그 구성원들이 '서운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소통의 각도에서만 보는 것은 너무 소모적이다. 사실 소통은 앞서 언급한 대로 혹시 모를 갈등 요소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도구지, 대표팀 운영의 핵심 요소는 아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도 조제 무리뉴 토트넘 감독에게 해리 케인의 상태를 물어보지 않는다. 클럽팀 감독들과 대화 혹은 소통을 통해 얻는 정보는 말그대로 참고자료일뿐이다. 결국 선수 선발은 감독의 권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뽑겠다고 하면, 막을 근거가 없다. 여기서 물어보자. 만약 벤투 감독이 홍 감독에게 사전에 연락해 홍 철의 몸 상태를 물었고, 그럼에도 홍 철을 뽑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것인가.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은 '왜 묻지도 않고 홍 철을 뽑았느냐'가 아니라 '왜 홍 철을 뽑았느냐'다. 건강한 홍 철은 의심할 여지없는 한국 최고의 레프트백이다. 하지만 지난 포항 스틸러스와의 동해안더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대단히 아쉬운 수준이었다. 팔라시오스의 돌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대표팀에 갈 만한 경기력이 아니었다. 그날 경기를 지켜봤다면, 굳이 몸상태를 홍 감독에게 묻지 않아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그를 뽑았다.
결국 이 선택은 우려대로의 결과를 낳았다. 우리 상황을 아는 듯 일본은 한국의 왼쪽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벤투 감독의 신뢰 속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홍 철은 상대의 측면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공격에서도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 아쉬운 것은 벤치를 돌아봐도 홍 철을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홍 철과 함께 레프트백 자리에 선발된 박주호(수원FC)는 이제 운동능력이 떨어져 측면 보다는 중앙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원FC도 그렇게 활용법을 잡아가고 있다. 벤투 감독은 수원 삼성에서 매경기 폭발적인 공격력일 보여주고 있는 이기제,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는 강상우(포항)를 외면하고, 두 선수를 뽑았다. 이는 포백을 즐겨쓰는 벤투 감독 입장에서 왼쪽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명단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과연 이들이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최고의 컨디션을 가진 선수들이냐' 는 점이었다. 대체발탁된 조재완(강원FC)은 지난 시즌까지 폭발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올 시즌 아직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해 스페셜매치 때 뽑혔어야 했다. 경남FC로 이적한 이정협은 '설사커'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이다. '불운의 사나이' 박지수(수원FC)도 사실 많은 축구인들이 "단순 불운이라고 하기에는 현재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기 때문에 중심이 높고, 그래서 매경기 핸드볼 파울을 범한다는 해석이다. 경기를 복기하면 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실제 박지수는 아직 100% 컨디션이 아니다.
벤투 감독은 올 시즌 리그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인 고승범 한석종(이상 수원) 이창민(제주 유나이티드) 등을 외면했다. 벤투 감독은 이전에도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 대신 자신의 풀에서만 선수를 선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해외파가 대거 빠진 탓이지만, 이번 누더기 명단은 이전부터 이어진 지적이 큰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 풀을 늘리지 않다보니 결국 잘 뛰지 못할 선수가 뽑히고, 한 팀에서 무더기 선발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홍 감독도 이야기 하지 않았나. "많이 뽑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뛸 수 있는 선수를 뽑았어야 한다."
결국 '벤투 감독, 현장은 뭐하러 갔냐'는 지적은 '왜 소통을 하지 않았냐'가 아니라 '도대체 무엇을 보고 왔느냐'가 됐어야 했다. 오늘 경기를 보면 명확하다. 몇몇 선수들은 냉정히 말해 이날 경기를 소화할 만한 몸상태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물론 소통의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지적할 것은 소통이 아니었다. 물론 해외파가 빠졌다고는 하나, 일본을 꺾을 수 있을 만한 최고의 선발이었는지는 분명 짚고 가야 한다. 오늘 재앙에 가까웠던 한-일전 결과는 여기서 출발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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