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은퇴하고 싶어요."
지금부터 1년전.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지훈련 캠프에 모 방송사 취재진이 방문했다. 하필이면 방문했을 때 제주 선수들은 국가대표도 고개를 가로 젓는다는 악명 높은 체력테스트, '요요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체력의 한계를 측정하는 테스트이기 때문에 다 마치고 나면 거의 대부분 선수들이 쓰러진다.
그렇게 쓰러진 채 신음하던 한 선수에게 취재진이 물었다.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자 "이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끙끙대던 이 선수가 답했다. "은퇴하고 싶어. 은퇴하고 싶어요." 이 인터뷰는 그대로 방송에 나갔고, 영상 캡쳐본은 K리그 커뮤니티에 순식간에 퍼졌다. '은퇴소망짤'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한 선수는 은퇴는 고사하고 '시즌 전 경기 출전' 목표를 이뤄내겠다며 씩씩하게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스스로를 '제주 유나이티드의 고인물'이라 부르는 안현범(28). '은퇴소망짤'의 주인공이다. 자기가 팀내 최고참은 아니지만, 팀에서 가장 오래 뛰었기 때문에 '고인물'이란다. 연고지의 특산품에 비유하면 '고인돌하르방'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돌하르방' 안현범은 2015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데뷔 후 이듬해 제주로 이적했다. 2018~2019년 당시 아산 무궁화(경찰)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2019시즌 막판에 팀에 합류했다. 그러고 보면 프로 커리어 7년(2015~2021) 동안 제주에서만 3시즌반을 보냈으니 '고인물' 아니 '고인돌하르방'이 맞다.
안현범은 지난해 축구팬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은퇴소망짤'을 만들던 순간에 대해 "요요 테스트를 열심히 뛰다 보니 목 안쪽에서 비릿한 피맛이 올라오면서 너무 힘들더라고요. 잠깐 누워있는데, 누가 말을 시켜요. 뉴스 카메라인줄도 몰랐고, 그냥 구단이 찍는 영상 콘텐츠인 줄 알고 일부러 좀 더 과장해서 말했는데, 그게 뉴스에 나왔어요"라고 밝혔다.
뉴스가 나오고, 화제가 된 뒤 안현범은 여러 반응을 접했는데, 그 중에서 아내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아내가 은퇴하려면 하라고,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고 하더군요. 애초에 은퇴 같은 건 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더라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아내의 말에 '은퇴소망(?)'을 깨끗이 접은 안현범은 지난해 팀의 핵심 윙백으로 활약하며 총 30경기에 출전했다. 제주가 승격 첫 해에 곧바로 4위를 차지한 데에는 안현범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시즌 종료 후 2021년 K리그1 베스트11 수비부문 후보에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팀이 이기는 데에 집중하다보니 나 역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공격포인트에 부담이 없는 포지션이라 실점을 막고, 1대1 맞대결에서 지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안현범은 2022시즌 두 가지 소망을 품었다. 하나는 '시즌 전경기 출전'이다. 안현범은 "지금까지 크게 아픈 적은 없었지만, 자잘한 부상 때문에 시즌 전경기 출전을 해보지 못했다. 전경기를 소화한다는 건 개인적으로도 기념될 일이지만, 팀도 안정적이라는 뜻이다"라고 개인 목표를 밝혔다.
두 번째는 팀 목표. 당연히 우승이다. "사실 K리그1 팀 중에서 목표가 '잔류'인 팀이 있을까. 다들 지금 목표는 우승이다. 지금도 여러 전술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감독님도 지난해보다 더 공격적인 면을 원한다. 윙백의 공격 가담이 많은 리버풀과 비슷한 부분이다. 나도 알렉산더 아놀드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런 공격적인 축구로 올해는 꼭 우승에 도전해보고 싶다." '돌하르방' 안현범의 두 가지 소망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안현범의 은퇴 시점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랫동안 현역으로 각광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다.
순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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