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일시적 문제는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은 곧 치유다.
하지만 근본적 상처는 봉합이 쉽지 않다. 두고두고 앙금으로 남는다.
2023 도쿄 대참사. 뭉쳐도 모자랄 한국 프로야구계가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는 각자도생이다. 뿔뿔이 흩어진 황량한 자리엔 폐허만 남았다.
성적보다 더 심각한 후폭풍이다.
1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한국 대표팀 선수단. 줄임 말로 '할말 하앓'(할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다) 이었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입을 꾹 다문 채 뿔뿔이 흩어졌다.
총 책임자인 이강철 감독 만이 취재진 앞에 섰다. 그 조차 억울함이 많은 듯 했다.
각 팀 팬들 사이에 불거진 특정 투수 혹사 논란에 대해 이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몇 명을 쓰는지 알아보시고 할 말을 좀 했으면 좋겠다"며 작심 발언을 했다.
서운함의 타깃은 야구팬들이 아니었다. 현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전화 한통만 했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던) 비난의 쓰나미에 편승해 무분별한 비판을 쏟아낸 동료 야구인들에 대한 깊은 실망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일부 야구 선배의 황당하고 무책임한 비난은 참기 어려웠다. 캡틴 김현수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13일 마지막 중국전을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대표팀에 많이 나오셨던 선배들한테는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는데, 다른 분들은 아주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저희와 같이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아쉽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 깊은 서운함이 국가대표 은퇴 발언으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김현수는 "저는 이제 끝났다. 코리아 유니폼을 입는 것은 마지막"이라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릴레이 은퇴 선언이 이어졌다. 대표팀 에이스 김광현 역시 다음날인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금까지 국가대표 김광현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은퇴를 공식화 했다. 그는 "국가대표란 꿈이었고 자부심이었다. 2005년 청소년 대표부터 이번 2023년 WBC까지 나라를 위해, 대한민국 야구를 위해 뛴 나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대표팀에서 많이 성장했고 많이 배웠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나섰을 때 심정,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제창하던 모습은 평생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라며 소중한 시간을 반추했다.
이어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계기로 삼아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이제는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고 분통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태극마크는 달고 싶다고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자리다.
그런 면에서 줄줄이 이어지는 국가대표 은퇴 선언은 다소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최악의 결과 속 줄을 잇는 대표팀 반납. 실망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는 점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그렇게 한국야구는 분열을 통해 표를 얻는 근본 없는 정치판 처럼 변해가고 있다. 성적보다 더 우려스러운 분열의 조짐. ?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한국 야구가 봉착한 최대 위기 속 리그의 중심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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