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졌지만 낭만은 있었다.
물론 삼성 팬들은 공감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 어쨌든 졌으니까 말이다.
선수 보호 및 부상 방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야구에서는 110구는 커녕 100구도 희소하다. 과잉 보호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00구를 넘기면서도 구위를 유지하는 투수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투수 데이비드 뷰캐넌은 8일 잠실 LG 트윈스전에 선발 출격했다. 1회말 1점을 주면서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8회까지 110구를 던지며 안타는 단 3개만 허용했다. 8이닝 1실점 승패 없이 물러났다.
사실 패전을 면한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삼성은 8회까지 0-1로 끌려갔다. 8회말에도 뷰캐넌이 마운드에 오르면서 완투패 각이 나왔다. 8이닝 1실점해서 죄송합니다.
뷰캐넌이 8회말 선두타자 박동원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경기는 드라마틱하게 흘러갔다.
0-1로 뒤진 8회말 무사 1루, 선발투수는 97구를 던졌다. 고민의 시간이다. 1점 더 주면 끝이다. 뷰캐넌은 본인이 책임지고 싶을 것이다.
팀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팀은 선수 개개인이 모여야 팀이다. 선수 개인의 의지와 동기 부여를 무조건적으로 팀보다 아래에 두기도 곤란하다. 이러한 투지가 하나로 뭉쳐야 승리로 연결된다.
삼성은 뷰캐넌을 믿었다. 뷰캐넌은 박해민을 1루 땅볼, 홍창기를 중견수 뜬공 처리했다.
뷰캐넌은 문성주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면서 삼성 벤치를 다시 시험에 들게 했다. 투구수는 108개에 이르렀다.
정현욱 투수코치가 맨손으로 마운드를 방문했다. 새 공을 받아들지 않았다.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2사 1, 2루에 LG 간판 김현수 타석이었다. 삼성 좌완 이승현은 좌타자 상대 피출루율이 0이었다. 뷰캐넌이 적시타를 맞았다면 삼성 벤치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뷰캐넌은 결국 김현수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임무를 완수했다. 컷패스트볼의 구속은 시속 144km로 기록됐다. 1회에 나온 그 속도 그대로였다. 삼성은 9회초 1-1 동점을 만들며 뷰캐넌의 패전을 지웠다.
만에 하나 뷰캐넌이 김현수에게 안타를 줬더라도 삼성 벤치의 선택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스포츠의 목적은 승리이긴 하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어떤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가 즐기는 것도 큰 매력이다. 동시에 한계에 도전하고 좌절하며 또 극복하는 스토리가 각본 없이 진행된다는 점은 오로지 스포츠만 주는 기쁨이다. 삼성과 뷰캐넌은 이것을 줬다. 뷰캐넌은 지지 않았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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