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징야 대신 '세진야'가 해냈다!"
대구FC 팬들이 열아홉 살 미드필더 '세진야' 박세진의 광주전 데뷔골 활약에 열광했다.
박세진은 13일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3 광주 원정에서 후반 19분 홍 철의 패스를 이어받아 빠르고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최원권 대구 감독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홍 철, 이용래 등 베테랑 선배, 고재현, 황재원 등 또래 형들이 몰려들어 될성부른 후배의 데뷔골을 뜨겁게 축하했다. 대구는 후반 33분 고재현의 쐐기골까지 터지며 2대0으로 완승했다. 지난달 16일, 7라운드 대팍에서 0-3의 스코어를 3-3까지 따라붙고도 3대4로 분패했던 아픔을 보란 듯이 설욕했다. 짜릿한 승리 직후 프로 입단 첫 인터뷰, 박세진은 "더 열심히 해서 '대구의 아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팬심을 흔드는 기특한 '정답'까지 내놨다.
2004년생 부산 출신 박세진은 8세 때 축구를 처음 시작했다. 조광래 대구 사장의 진주축구클럽에서 축구의 기본기를 배웠고, 부산 사하중-태성고를 졸업한 직후 대구FC 유니폼을 입었다. 연령별 대표팀 경력은 한번도 없지만 눈 밝기로 유명한 조 사장과 최원권 대구 감독은 한눈에 보석같은 재능을 알아봤다. 동계훈련을 성실히 이행한 박세진을 첫 시즌부터 믿고 쓰기 시작했다. 3월4일 제주와의 홈경기(1대1무)서 첫 선발로 나서 60분을 뛰었고, 4월 1일 인천전(0대0무) 이후 후반 조커로 나서 게임체인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박세진이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졌다. 지난달 16일 0-3으로 밀리던 광주와의 홈경기서도 박세진은 후반 17분 투입된 지 2분 만에 고재현의 만회골을 도우며 첫 공격포인트와 함께 3-3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2라운드에선 선발로 쓸 것"이라고 공언대로 최 감독은 9일 포항(1대1무), 13일 광주전에 잇달아 박세진을 선발로 내세웠다. 세징야, 에드가, 케이타, 홍정운 등 주전들이 부상으로 빠진 위기에서 '영건' 박세진이 날아올랐다.
'대구의 왕' 세징야를 빗대 팬들은 박세진에게 '세진야(세진+세징야)'라는 신박한 별명을 선물했다. 최 감독은 "세진이는 창의적이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다. 공 차는 기술, 테크니션으로 치면 거의 세징야와 동급"이라고 극찬했다. "세징야가 잘 '재끼는(제치는)' 스타일이라면 이 친구는 모드리치처럼, 빠른 선수가 아닌데도 영리하게 볼을 잘 다루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어린 선수들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출전시간을 통해 경험을 쌓게 되면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이날 최 감독은 후반 박세진을 원톱으로 올려쓴 전술에 대해 "수비에서 공격전환시 빌드업에 어려움이 있는데 세진이가 가운데서 버텨주는 부분을 기대했다. 발밑에 갖다주면 볼을 잘 뺏기지 않는다. 위로 올라가서 한 사람만 제치면 큰 찬스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세진이는 어리지만 플레이가 어리지 않다. 경기장 안에선 프로페셔널이다. 분위기에 휩쓸리지도 않고 홈에서도 원정에서도 자기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어린 선수들을 겪어본 최 감독은 실력만큼 '인성'과 '태도'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세진이는 교체로 경기를 뛰고 다음날 2군 경기를 나가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하는 선수다. 발전하려는 겸손한 자세,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오늘 같은 경기를 통해 더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세진은 데뷔골 소감을 묻는 질문에 "골이 들어가는 순간 아무 생각도 안나고 머릿속이 하얘지더라"며 웃었다."(홍)철이 형의 패스가 들어오는 순간 '이건 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골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감은 있지만 경기 나갈 때 항상 떨리고 긴장된다. 오늘도 많이 긴장했는데 형들이 도와주셔서 할 수 있었다"며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대구의 '원톱' 전술에 대해 박세진은 "원톱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었다"면서 "상대 센터백의 움직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원톱도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대구에선 중앙 미드필더로 주로 서지만 고등학교 땐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원톱, 제로톱 모두 설 수 있는 전천후 공격자원이다. 장점을 묻는 질문에 "키핑 능력"을 꼽았다. "공이 들어왔을 때 잘 뺏기지 않고 연결하는 건 자신 있다"고 했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엔 "황인범, 이강인 선수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대구 축구의 특징은 조광래 사장의 국가대표 사령탑 시절 '만화축구'와 궤를 같이 한다. 극강의 수비로 상대를 꽁꽁 묶어낸 후 역습 순간 빛의 속도로 폭풍질주해 '원샷원킬' 기어이 상대 골망을 뚫어내는 축구. 빠른 공수 전환 속도, 그라운드 위 아래를 90분 내내 오르내리며 철통처럼 막고 쉼없이 찔러야 하는 궁극의 '꿀잼' 축구를 위해선 절대적 체력이 요구된다. 박세진 역시 "처음엔 엄청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구 축구의 중요한 특성은 수비력이 받쳐줘야 한다.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개인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박세진이 프로 무대 적응을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볼 키핑'. "절대 공을 뺏기지 말자. 공을 뺏기면 주눅 드니까 언제나 첫 터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팀 막내로서 형들의 사랑도 실감하고 있다. "형들이 데뷔골을 정말 많이 축하해 주셨다. 이 팀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데뷔골을 도와주신 (홍)철이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아직 못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고등학생이었던 '미완의 대기' 박세진은 매경기 국대 출신 선배들과 함께 뛰는 것이 즐겁고 설렌다. 1985년생 이근호와 21살 차이, 1990년생 홍 철과는 14살 차이다. "영광이다. 대표팀 형들과 함께 발을 맞추는 것이 신기하다. 고등학교 때 TV로 보던 형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게 실감이 안난다"며 웃었다. 꿈을 묻는 질문에 "태극마크, 대표팀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13라운드만에 올 시즌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첫 시즌 10경기 출전, 1골이 목표였다"고 했다. 이날 광주전까지 10경기를 뛰었고,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공격포인트 5~7개"라는 새 목표를 설정했다. "대팍 홈 팬들 앞에서도 골을 넣고 싶고, 다음 대전전도 승리해 연승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2003~2004년생 또래들이 김은중호에서 20세 이하 월드컵에 도전하는 시기, K리그 대구에서 또 하나의 꽃봉오리가 터졌다. 대구의 '세진야'는 "20세 이하 월드컵도 가고 싶었지만, 오늘 데뷔골을 넣어서 다 괜찮다"며 싱긋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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