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나는 '죽일 놈'이지 뭐."
'황새' 황선홍 감독(55)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황룽스포츠센터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에서 2대1로 승리해 금메달을 확정한 뒤에야 대회 기간 내내 꾹꾹 눌러둔 감정을 겉으로 표출했다. 선수,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와 일일이 포옹했다. '우승 사령탑'이 되어 라커룸으로 향하는 황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로 관중석에 손을 흔들었다. 쿠웨이트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9대0 대승을 거두고, 첫번째 고비였던 개최국 중국과 8강전에서 가볍게 승리한 뒤에도 웃지 않고 도리어 굳은 표정으로 일관해 주변인으로부터 '좀 웃으라'는 조언을 들었던 황 감독이었다. 그렇게 '평정심 유지'를 강조하던 황 감독은 우승 직후 감정의 벨트를 풀었다.
황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제야 웃는다'는 취재진의 말에 "대회 내내 긴장감을 유지했던 건 토너먼트 대회에선 심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론 조금 무겁게, 때론 즐기자고도 하며 컨트롤을 많이 하려고 했다"며 "저 웃는 걸 좋아한다. (굳은 표정을 지은 건)다분히 방송용일 수 있다"며 웃었다.
황 감독이 이날 표출한 감정 중에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간 느꼈던 설움도 살짝 내비쳤다. 황 감독은 대회 기간 중 연이은 실수로 비판을 받은 주장 백승호, 대회 전부터 2부리거라는 꼬리표 때문에 비판을 받은 공격수 박재용(전북)과 안재준(부천)에 대해 언급하는 와중이었다. 그는 "승호가 내게 안겨 울었던 건 절실해서가 아닐까. 승호에겐 (여론을)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100% 믿었다. 재용이나 재준이에겐 절대 댓글을 보지 말라고 했다. 후배들이 언론에 욕을 먹고…(그렇게 따지면)나도 '죽일 놈'이지 뭐"라고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 감독은 2021년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뒤 지난해 AFC U-23 아시안컵에서의 성적부진과 전술 부재 논란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9월초에 국내에서 치른 파리올림픽 예선 카타르전 패배는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황 감독은 그런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 감독이 아시안게임에서 성공하기 위해 꺼낸 필승 비기는 '믿음'이었다. 아무리 좋은 전술과 전략을 짜내고 상대 분석을 잘한다고 한들,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의 믿음, 선수들끼리의 믿음과 응집력이 없으면 말짱도루묵이라고 생각했다. 미드필더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은 "감독님이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여론이 많이 안 좋고 질타도 많이 받고 하셨는데, 항상 선수들을 믿어주시고 선수들도 감독님을 항상 믿었던 것 같다.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를 우승시켜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일드카드 수비수 설영우(울산)는 믿음을 바탕으로 원팀을 유지하는 것을 "황선홍 매직"이라고 표현했다.
일각에서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우승 확률을 35%로 낮게 예측하고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그럴 때마다 황 감독이 선수들 앞에서 한 얘기는 "너희들이 최고"였다. 황 감독은 "밖에서 얘기하는 건 신경쓰고 싶지 않다. 안에서 응집하면 된다"는 생각 하나로 '원팀 만들기'에 골몰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이 팀이 정말 좋다"(홍현석) 같은 반응이 싹트기 시작했다.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라고 인식되는 긴장감 높은 대회에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건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팀 전체가 연습경기 한 번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에 돌입한 팀답지 않게 대회 초반부터 서로를 위해 한 발 더 뛰고, 동료가 위험에 빠졌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럴 때 황 감독이 한 일은 흥분한 선수들이 우승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황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았다. 어려운 대회에서 우승한 자신감을 토대로 내년 파리올림픽에도 도전한다. "내 길을 가겠다"고 말할 때 황 감독의 눈이 빛났다.
항저우(중국)=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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