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운동 신경은 그야말로 타고났다. 어쩌면 '야구 선수'가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초등학교 시절 박철우(39)는 야구부가 있던 학교를 다녔다. 김강민(은퇴) 구자욱(삼성) 등이 나온 '야구 명문'이었다.
선수로서의 자질을 본 야구부 코치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봐라"고 했다.
하지만, 박철우는 줄행랑을 쳤다. 2m 키의 좌완투수. 야구 선수로는 최고의 신체조건일 수 있었다. 박철우는 "그 때 공을 던졌더라면…"이란 유쾌한 상상을 하곤 했다.
배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렇다고 쉽게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야구부가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더라. 운동은 좋아했지만, 운동부라는 자체가 싫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철우의 자질을 간파한 인물은 본리초 장응찬 배구부 감독. 배구부 입단이 싫다던 박철우에게 1년 뒤 다시 한 번 권유했고, 비로소 '배구선수 박철우'가 탄생하게 됐다.
은퇴식에서 박철우는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으로 장 감독을 꼽았다. 프로에서 만난 사령탑을 한 명씩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전했던 그는 장 감독에 대해서는 "그 권유가 없었다면 선수 생활을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운동부가 싫었던 초등학생은 한국 배구의 불멸의 레전드로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V리그 원년부터 프로생활을 한 그는 현역 시절 총 564경기에 출전, V리그 통산 6623득점, 공격 성공률 52.13%의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득점 및 공격 득점(5603점) 모두 1위다. 국내 선수 한 경기 최다 득점(50점) 기록도 박철우가 가지고 있다. 그가 현역 시절 품은 우승 반지는 무려 7개나 된다.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박철우는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외적으로 항상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모범이 되고 싶었다. 코트 내에서도 도리를 지킨 선수가 되고 싶었다"며 "그냥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가 아닌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는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철우를 겪었던 사령탑들은 "좋은 선수 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자 리더"라고 했지만, 박철우는 한 없이 겸손했다.
선수로서 최고를 누렸던 그였지만 마지막 순간 유니폼을 벗는 건 쉽지 않지 않았다. 함께 유니폼을 벗고 은퇴식도 함께 한 김광국은 박철우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박철우는 "지난 시즌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알고 있었다. 끝이 날 걸 알고 뛰는 게 힘들었는데 그 시간을 함께 해준 (김)광국이에게 고맙다. 많은 감정을 나눴다. 지금도 광국이와는 자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코트를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하는 시간.
자신의 기록이 '깨져야 한다'고 말했던 그는 후배에게 당부하기보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을 했다.
박철우는 "우리가 잘해야 한다. 앞으로 후배를 양성하고, 행정을 하는 시스템에 언젠가는 관여하는 시간이 있을텐데 나 자신이 아닌 선수들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배구인 모두가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스승이자 '장인'인 신치용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이사가 은퇴 후 "1년은 쉬어라"라고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달려온 선수 생활. 박철우는 "가만히 있으면 뭔가 불안하다"며 지금은 배구 해설자로 배구장을 찾고 있다. 그는 은퇴식이 열리는 경기에서도 마이크를 잡았다. 박철우는 "은퇴식이라고 해서 밖에 물러나 있는 게 싫었다. 운동선수로서 생활은 끝났지만, 제 2의 인생은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배구 인생 2막'의 불꽃을 그 답게 키워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수원=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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