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연상호 감독이 돌아왔다. 박정민과 권해효의 열연은 괴물 같다. 그리고 얼굴 없는 신현빈은 미(美)쳤다. 거품이 꺼진 한국 영화에 경종을 울리는 충격적인 아트버스터 '얼굴'이 탄생했다.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미스터리 영화 '얼굴'(연상호 감독, 와우포인트 제작)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과 현지 행사로 캐나다 토론토에 체류중인 '얼굴'의 주역들이 화상 간담회로 자리를 대신했다. 화상 간담회에는 시각 장애를 가진 전각 장인 임영규의 젊은 시절과 그의 아들 임동환까지 1인 2역을 소화한 박정민, 임영규의 현재를 연기한 권해효, 40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인 정영희 역의 신현빈, 정영희가 일했던 청계천 피복 공장의 사장 백주상 역의 임성재, 정영희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PD 김수진 역의 한지현,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참석했다.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남자와 그의 아들이 40년간 묻혀 있던 아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얼굴'. '부산행'(16) '염력'(18) '반도'(20) 등을 통해 '연니버스'를 완성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연상호 감독의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확고한 주제 의식을 담은 작품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묵직한 이야기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의 날개가 되어 준 캐스팅 라인업도 탄탄하다. '얼굴'은 한국 영화계 든든한 '파수꾼'으로 자리잡은 박정민이 데뷔 이래 최초 1인 2역에 도전했고 동시에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며 '괴물 같은 연기력'을 뽐냈다. 전매특허 '결 다른 짜증'부터 섬뜩한 광기까지 빈틈없는 호연으로 '얼굴'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선인부터 악인까지 다양한 캐릭터로 입체적인 얼굴을 보여준 '믿고 보는' 권해효도 박정민과 함께 2인 1역에 도전,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 장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얼굴'에서 가장 파격 변신을 시도한 신현빈의 하드캐리한 열연도 압도적이다. 또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신현빈은 '얼굴'에서 단 한 장면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 전반 미스테리를 주도하는 인물로 강렬한 힘을 내뿜는다. 신현빈의 인생 최고의 커리어, 인생 캐릭터라 자신해도 아깝지 않다.
'얼굴'은 '연상호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와 제작진 20여명이 뭉쳐 단 2주의 프리 프로덕션과 13회 차 촬영, 순제작비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 제작비만으로 완성한 아트버스터로 눈길을 끈다. 블록버스터에 취중된 위기의 한국 영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얼굴'이 차갑게 식은 극장에 파동을 일으킬지 관심이 쏠린다.
이날 박정민은 "이 작품의 원작에 호감을 느낀 한 명의 독자였다. 이 작품응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작가의 메시지,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구체적으로 묵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연상호 감독이 사회에 투덜되는 작품을 만드는 게 좋다. 그래서 기꺼이 참여하게 됐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권해효는 "'반도' 촬영 당시 이 원작을 만나게 됐다. 연상호 감독과 첫 작업이 '사이비'였는데 '사이비'를 만들 때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제작 방식이 연상호 감독의 가장 좋은 장점을 발휘하는 작품인 것 같았다"고, 신현빈은 "이야기가 가진 힘에 끌렸다. 내 캐릭터는 배우로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설정이었다. 어려울 수 있겠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것 같았다"고 답했다.
더불어 임성재는 "기존에 '부산행'부터 '계시록'까지 연상호 감독이 큰 망치를 들고 무두질 하면서 박력있게 작품을 했다면 이번 작품은 바늘로 바느질을 하는 듯한 작품일 것 같았다. 연상호의 바느질은 어떨까 궁금했다", 한지현은 "좋은 선배, 감독과 한 작품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연상호 감독은 "이야기를 처음 쓰게 된 이유는 내 자신이 성취에 집착하고 있더라. 나는 어디에서 만들어 졌나부터 시작하게 됐다. 이어서 한국은 70년대 고도 성장을 이뤘는데, 그 당시 한국 근대사가 잃어버린, 착취해버린 것으로 이야기가 확장됐다"며 "박정민의 아이디어가 핵심이었다. 예산이 제안되어 있어서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처음에는 1억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세상 물정을 몰랐던 이야기더라. 후지게 만들면 어쩌지란 걱정을 했는데, 첫 단추부터 박정민이 들어오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이 됐다. 다들 좋은 마음으로 도와준 작품이고 그래서 퀄리티가 내 예상보다 높아졌다. 저예산 영화가 줄 수 있는 힘과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요즘은 시스템으로 만들 수 없을까란 욕심도 생겨 대충 계산을 해봤는데 적어도 20억원은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겠더라. 지금까지 영화를 만든 기준과 다른 형태의 영화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깊게 하고 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그는 "이번 작품처럼 흥행에 목 말랐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예산이 작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낮지만 다들 너무 도와줘서 다들 많이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 흥행이 정말 간절하다"고 고백해 장내를 웃게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연기하게 된 박정민은 "시각장애인 연기는 시력이 불편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고하기도 했고 실제로 시갈장애를 겪는 가족의 일원으로 꽤 오랜 시간 보내다 보니 행동 패턴이 있더라. 준비 과정도 그렇고 촬영도 그렇고 아버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이 작품은 의도치 않게 선물이 되어 준 것 같다"고 남다른 소회를 더했다.
결 다른 짜증 연기로 감탄을 자아낸 박정민은 "1인 2역을 했는데, 아들 역할을 할 때는 크게 고려할 게 없었던 게 나의 모든 상대역이 짜증을 유발했다. 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치밀어 왔고 그게 연기로 나온 것 같다"며 "젊은 아버지 시절을 연기할 때 조금 더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 영화 촬영을 하면서 결심한 게 아버지 연기를 할 때는 과감해지고 싶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과거의 장면은 누구도 보지 못했던 시간이고 어쩌면 아버지 기억에만 있는 장면일 수도 있었다. 기억이 왜곡되고 증폭된 상황에서 감정적인 연기를 할 때 조금은 과장되어도 좋지 않을까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오히려 만화적이어도 납득될 것 같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 나 조차도 보지 못했던 얼굴을 희망하며 촬영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얼굴'에서 단 한 장면도 얼굴이 나오지 않았던 신현빈은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어려웠던 경험일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두렵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상상력으로 정영희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어떤 표정, 어떤 감정이 느껴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여러 시도를 했다.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내가 가진 기존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열린 생각을 갖게 했다"고 곱씹었다.
박정민과 부부 호흡을 맞춘 신현빈은 "'변산'이라는 작품에서 만났고 이번 작품에서 부부로 다시 만나게 됐다. 압축적으로 짧은 시간에 촬영을 해야 했다. 함께하는 장면이 편안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서로 어느정도 알고 있고 서로를 믿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받아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됐다. 이런 표현은 처음인데, 함께 작품을 한다는 것만으로 큰 의지가 된 것 같다. 외로웠던 순간이 마냥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웃었다.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히는 북미 최대 규모의 영화제인 토론토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된 '얼굴'은 토론토 현지 기준 지난 9일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전 세계 최초 공개됐다.
현지의 반응을 고스란히 느낀 연상호 감독은 "토론토영화제에 와보니 박정민은 이 곳의 스타다. 토론토의 저스틴 비버가 된 것 같다. 현장에 엄청나게 많은 팬이 와 있더라. 1800석 되는 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 극장에서 관객이 꽉 차서 다 같이 영화를 본다는 게 감동이었다.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몰입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며 "이 영화는 한국인이 몰입하기 좋은 영화가 아닐까 걱정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외신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 영화를 다들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관객도 이 영화에 대해 공감과 몰입을 해준 것 같다. 굉장히 인상적인 추억이 됐다"고 밝혔다.
박정민은 "2년 만에 왔는데 한층 인기가 높아졌더라. 동포 여러분의 힘을 많이 받게 됐다혹시라도 저스틴 비버 선생님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농을 던졌다.
'얼굴'은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등이 출연했고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11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