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레이예스를 바꿀 것 같아?"
진심일까 떠보는 걸까. 사령탑의 얼굴에 알듯 모를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23일 울산 문수야구장. 말 그대로 벼랑 끝 롯데 자이언츠다. '3위 둥둥섬'이란 농담을 듣던 롯데는 12연패 한방에 5위가 위태로워 졌고, 이후 5연패를 당하면서 5강 밖으로 밀려났다.
사령탑 입장에선 언제든 최정예 라인업으로 밀어붙이길 원하기 마련. 하지만 부상도 있고, 선수들의 컨디션 자체도 한시즌 내내 일정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선발진도, 불펜 운영도, 야수 라인업도, 수비 위치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바꾸게 된다. 결국 이걸 잘하는 사령탑과 코치진이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마련.
김태형 감독은 특히 타자 관리에 있어 독보적인 감각의 소유자다. 육성선수 출신 신인이든, 베테랑이든, 편견 없이 현재 컨디션만 보고 밀어주는 배포도 있다. "지금 타격감이 좋은 선수가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날도 김태형 감독은 "라인업을 정해놓고 내보낼 수야 있나. 베스트 라인업이 물론 있지만, 잘하면 계속 그렇게 가는 거고, 빠지는 선수가 있으면 어느 포지션의 누가 빠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외국인 선수는 어떨까. 올시즌 반즈를 감보아로 바꾼 선택은 탁월했다. '초대박'보다는 '실패하지 않을 선수'를 택하는 롯데 구단의 기조에 정면으로 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10승 외인' 데이비슨을 벨라스케즈로 바꾼 건 완전 실패였다. 하필 팀 성적도 데이비슨의 교체를 기점으로 급전직하했다. 만약 가을야구에 실패할 경우, 다른 이유를 대기도 어려워진 상황.
부임 이래 꾸준히 윤동희의 중견수 기용을 타진해온 김태형 감독이다. 하지만 현재 롯데의 상황에선 레이예스가 우익수를 보는 게 어렵다면, '중견수 황성빈'을 대체할 만한 외야수가 없다. 윤동희 만큼 어깨가 강한 주전급 토종 외야수도 없다. 레이예스-황성빈-윤동희 체제가 사실상 베스트인 이유다.
그렇다면 레이예스를 교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레이예스는 올시즌에도 179안타를 기록, 최다안타 1위를 기록중이다. 타율 3할2푼8리(2위) 12홈런 101타점(3위), OPS(출루율+장타율) 0.863(9위)의 준수한 성적. 허벅지에 부상을 안고 있지만,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전 경기에 출전할 만큼 건강 관리와 멘털 양쪽 모두 인상적이다. 항상 태극기 머리띠를 쓰는 등 한국 문화 적응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장타력이 부족하다. 롯데는 올해 팀홈런 71개로 10개 구단 중 압도적 꼴찌인 팀이다. 홈런 1위 디아즈(48개)를 보유한 삼성 라이온즈가 팀홈런 전체 1위(151개), 2위 위즈덤(31개)의 KIA가 2위(138개), 4위 오스틴(28개)의 LG가 3위(124개), 3위 데이비슨(32개)의 NC가 4위(119개)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이예스는 데뷔 첫해 17개, 올해는 12개에 그치고 있다. 타격 성향 자체가 전형적인 슬러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팀내 홈런 1위다. 레이예스 외엔 두자리 수 홈런을 친 선수가 없다. 나승엽(9개) 윤동희 전준우(이상 8개)가 한자리 수 홈런으로 뒤를 잇고 있다. 작년에 18개로 팀내 1위였던 손호영은 올해 4개에 그치고 있다. 일각에서 레이예스 대신 확실한 거포를 데려오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태형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현재로선 레이예스가 내년에도 롯데에 있을지 모르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에 미소가 감돌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김 감독은 "레이예스를 바꾸라고? 타율 3할3푼을 치는데 어떻게 바꾸나"라고 반문했다.
"외국인 타자는 사실 투수보다 더 예상하기 어렵다. 투수는 던지는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의 적응도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오는데, 타자는 아니다. 와서 치는 걸 봐야한다."
과감하게 데이비슨의 교체를 밀어붙였다가 말 그대로 크게 '피를 본' 사령탑의 조심스러운 입장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화려한 커리어와 강점, 미국에서도 검증된 건강, 현지에서 확인한 구위, 확실한 동기부여까지 갖췄기에 벨라스케즈를 향한 신뢰는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벨라스케즈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외국인 투수 반열에 오를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검증이) 더 어렵다'는 타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확실한 대안이 없다면 내년에도 부산에서 레이예스를 보게 될 것 같다.
울산=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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