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주인공은 '개인'가 아닌 '그룹'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17일 공개한 '2025 올해의 인물'은 특정 정치인이나 스타 경영자가 아니었다.
타임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주도하는 리더 그룹을 통칭해 'AI 설계자들(Architects of AI)'이라 명명했다. 100년 가까운 타임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파격이었다.
명단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포진했다.
챗GPT의 아버지 샘 알트먼(오픈AI), 알파고의 주역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AI 칩의 황제 젠슨 황(엔비디아), 'AI 안전'을 기치로 내건 다리오 아모데이(앤트로픽)까지 포함됐다.
타임이 밝힌 선정의 이유는 명확하다. "AI는 이제 실험실의 신기한 발명품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재건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경제와 노동, 교육, 심지어 우리가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꾸는 거대한 흐름을 한 명의 얼굴로 대변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 천재의 시대 가고 '시스템'의 시대 왔다
이번 선정은 '영웅 서사'의 퇴장을 의미한다.
그간 정보통신업계(IT)는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걸출한 천재 1인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에 익숙했다. 하지만 2025년의 AI 판도는 다르다.
지금의 AI는 천재 프로그래머 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 뇌를 모방한 소프트웨어(오픈AI·구글), 그 지능을 가동할 물리적 두뇌인 반도체(엔비디아), 막대한 전력과 데이터센터를 공급하는 인프라(MS·아마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 시스템이다.
타임은 이 복잡한 생태계를 조율하는 이들을 '개발자'를 넘어선 '설계자'로 규정했다.
◇ 지금 이 순간 왜 '설계자'인가
'설계자'라는 단어 선택에는 뼈 있는 통찰이 담겼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쟁이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였다면, 이제는 "누가 더 우리 삶에 깊숙이, 그리고 안전하게 침투하느냐"로 전선이 이동했다.
연구실에 갇혀 있던 AI를 학생의 과제물 도우미로, 직장인의 업무 파트너로, 때로는 예술가의 붓으로 치환해낸 것이 바로 이들의 능력이다.
하드웨어 기업인 엔비디아의 수장이 포함된 것은 AI라는 거대한 정신을 담기 위해선 칩과 인프라와 같은 강인한 육체가 필수적이라는 방증이다.
◇ 권력은 이미 '시스템'으로 이동했다
타임의 이번 표지는 축하인 동시에 우리에겐 서늘한 경고다.
'설계자'가 있다는 건,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의 규칙을 정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AI가 추천하는 정보는 편향되지 않았는가? AI의 판단 기준은 공정한가? 이 질문의 끝에는 항상 설계자들이 서 있다.
AI는 스스로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인간이 설계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문제는 이 '설계도'를 그리는 권한이 소수의 글로벌 빅테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설계도를 전 세계에 공개해 집단지성으로 수정하자는 진영(메타 등 오픈소스)과, 위험하니 소수가 통제해야 한다는 진영(오픈AI·구글) 간의 '설계 철학 전쟁'이 치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이미 우리 사회의 기본 골조가 됐다. 타임이 조명한 것은 기술의 성취가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권력의 이동인 셈이다.
이제 대중의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AI가 얼마나 똑똑해졌나"에 감탄할 때가 아니다. "이 AI는 누구의 손으로 누구를 위해 설계되고 있는가." 타임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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