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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글은 단순한 표음문자가 아니라 하늘·땅·사람의 이치를 담은 입체적인 생명체입니다. 광화문 현판만큼은 훈민정음체 한글로 바꿔 우리 문화의 뿌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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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서예가는 현재의 현판에 대해 "흑백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한 결과물이라 살아있는 기운이 없다"며 "광화문의 역사성과 미래 가치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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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제안한 '상단 한자·하단 한글' 병기안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이제는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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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조형예술로 재해석해 세계에 알려온 그의 이런 신념은 평생 붓과 함께해온 삶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교사의 권유로 서예를 시작한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시련 앞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운영하던 디자인 회사를 정리하고 '가장 좋아하는 일'인 서예를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캘리그라피'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지만, 자신의 작업은 전통 서예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글자가 가진 뜻과 소리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 서예가는 전통 서예를 현대적 디자인에 접목했다. "꽃은 꽃처럼, 봄은 봄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한글의 조형성을 극대화했다. 예컨대 '솔'이라는 글자에서 종성 'ㄹ'은 뿌리가 되고, 중성 'ㅗ'는 가지, 초성 'ㅅ'은 솔잎이 되는 식이다.
모음의 길이를 늘이거나 방향을 바꾸면 소리의 높낮이·길이·리듬까지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강 서예가는 한글의 구조적 특징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초성은 하늘, 종성은 땅, 중성은 사람의 역할을 하며 공간 개념이 생긴다는 것이다. 천·지·인으로 나눠진 기본 틀 안에서 입체성과 쌓임의 구조가 가능해졌고, 이는 다른 문자 체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 손 글씨의 쇠퇴에 대해서는 "키보드 위주의 생활로 악필이 늘었지만, 반대로 손 글씨의 가치는 더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교보문고 손 글씨 공모전 참가자가 10년 전 2천~3천 명에서 올해 7만 명으로 급증한 사례를 들며 "쓰는 행위 자체의 재미와 감정 개입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 서예가의 이러한 신념은 IMF 외환위기라는 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더욱 굳어졌다. 상업 작업의 시작 역시 그 시기부터였다.
디자인 회사가 문을 닫은 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서예를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일본에서 전통 서예를 간판·패키지·로고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도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표작인 '참이슬'은 2005~2006년경 작업했다. 어린 시절 진로(참이슬 전신 회사)가 후원한 서울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정성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낮은 도수(19.8도)로 여성 소비자층을 넓히려던 전략에 맞춰 '슬'자에 여성의 머리 묶은 형상을 은은하게 넣었다고 밝혔다. "천 번도 넘게 썼다"는 말에서 작업의 치열함이 엿보인다.
'화요'는 한자 요(遼) 자가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2009년 한글로 바꿨다. 불처럼 타오르다 고요해지는 술의 성질을 '화' 자에 매화 한 송이가 피어나는 이미지로 재해석했다.
그는 상업 작업의 핵심으로 "제품의 정성·시간·원료·콘셉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꼽았다. 획 하나하나에 기운이 생동해야 하며, 병 라벨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가독성과 장기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비엔나·베니스 전시와 모스크바·스페인·인도네시아·호주 한국문화원 초청 강연·퍼포먼스 경험을 통해 "외국인들이 '꽃이 꽃처럼' 보인다는 점에 가장 큰 감동을 한다"고 했다. 한글의 천·지·인 원리를 설명하면 더욱 공감한다는 반응도 많았다.
강 서예가는 앞으로 2028년 3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면서 ▲ 한글에 대한 오해 해소 ▲ 올바른 한글 쓰기 교육 ▲ 한글 조형성을 넘어서는 순수 작품 활동 ▲광화문 현판 운동 지속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붓끝의 무게, 경험, 상상력은 대체할 수 없다"며 "더 뒤로 돌아가 서예 본질에 충실히 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한글의 뿌리 정신을 미래 세대에 제대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덧붙였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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