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호주)=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한화 이글스 하주석(32)에게 2025년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됐다.
과감한 FA 신청은 굴욕으로 돌아왔다. 4년 50억원에 심우준을 영입한 한화는 하주석에겐 뒤늦게 1년 최대 1억 1000만원이란 계약만을 안겼다. 안치홍 이도윤 황영묵 등과의 포지션 경쟁에서도 완전히 밀려난 듯 했다.
하지만 심기일전하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타율 2할9푼7리 4홈런 28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28를 기록하며 반전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하주석이 살아나니 팀 케미가 살면서 상승세의 원동력이 됐고, 전체적인 짜임새에도 안정감이 붙었다.
주요 경쟁자들 대비 타격 면에서 한수위의 기록을 냈고, 수비에선 심우준과 이른바 '51억 콤비'로 호흡을 맞추며 지난 내야 수비의 아쉬움들을 완벽하게 극복해냈다. 빗맞은 안타를 원천 차단하는 수비범위에 중계플레이에서도 강한 어깨와 넓은 커버를 보여줬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끈 건 코디 폰세-라이언 와이스 원투펀치의 호투였지만, 그 뒤를 받친 탄탄한 센터라인 수비의 공도 적지 않았다. 결국 강팀과 약팀의 경계선은 수비에서 갈리기 마련이다.
가을야구에서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합쳐 타율 3할3푼3리(36타수 12안타, 2루타 4) 4타점 OPS 0.792를 몰아쳤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번의 3안타 경기를 연출했고, 한국시리즈에선 전경기 안타를 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돌아온 요나단 페라자도 가장 반가웠던 선수로 하주석을 꼽았다. "2024년 한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겐 특별한 선수"라고까지 표현했다. 한때 주장까지 맡았던 하주석의 팀내 비중을 보여준다.
멜버른에서 만난 하주석은 "개인 기록보다는 우리가 한국시리즈까지 갔고, 그 과정에서 내가 도움이 됐다는 게 가장 기쁘다"면서 "지나간 상황에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해야할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1경기 1경기 치르다보니 좋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특히 가을야구의 기억은 앞으로 내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남을 것 같다"고 돌아봤다.
"포스트시즌은 사실 분위기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더그아웃에서 한번이라도 더, 크게 액션을 하면서 팀 분위기를 올려주고 싶었다. 보다 전투적인 마인드를 북돋웠다고 할까. 힘들 때 버텨내다보면 또 좋은 기회가 오는 게 프로의 세계다."
하주석의 이같은 헌신은 김경문 감독이 부임 이후 줄곧 추구해온 '얕보이지 않는 팀, 방심할 수 없는 팀'으로서의 한화로 변화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결국 FA 미아 위기, 스프링캠프 제외 등 냉대 속에도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스스로를 갈고닦은 성실함이 빛을 발한셈. 한화 역시 시즌 후 연봉을 122.1% 인상된 2억원으로 올려주며그 결과에 보답했다.
특히 신인 시절 이후 13년만에 다시 2루 포지션을 맡았음에도 큰 무리 없이 해낸 점에서 하주석의 재능과 노력이 돋보인다. 그는 "1루에 던질 때 반바퀴 돌아야하는 점은 불편하지만, 반대로 1루와 가까워서 편한 면도 있다. 2루수로서의 픽업이나 더블플레이를 몸에 익히는게 쉽진 않았다"면서도 "(심)우준이야 수비는 정평이 나있는 선수고, 나도 못하는 편은 아니라 생각한다"며 미소지었다.
사실 '51억 콤비'는 애증이 담긴 호칭이다. 파트너인 심우준 역시 몸값에 걸맞지 못한 활약으로 원성에 시달렸다. 선수들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주석은 "어렵게 내 자리를 다시 찾았다. 경쟁을 통해 이겨나가야하고, 올해는 사랑받는 키스톤 콤비가 되는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시즌이 끝난 뒤엔 한화를 대표하는 치어리더 김연정과 백년가약에 골인하며 기쁨이 두배가 됐다. 하주석은 "사실 철저하게 숨겼다. 선수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공개되고 나서 여기저기서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면서 멋쩍어했다.
야구 선수의 삶에 대해 잘 아는 아내의 내조가 기대되는 포인트다. 하주석은 "야구선수는 주말과 평일, 밤과 낮이 바뀐 삶을 산다. 1년 내내 밖으로 도는 직업"이라며 "우린 리듬이 똑같이 맞춰져있고, 정말 잘 챙겨줘서 행복하다. 안정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다"라며 행복을 만끽했다.
"날 사랑해주는 팬들이 아직 많다는 걸 새삼 느낀 한해였다.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 이제 내가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 팬들과 만나는 자리에도 최선을 다하고, 한화생명볼파크에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즐거운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작년 기록으로 '잘했다'고 말하긴 조금 부족하다. 올해는 홈런보다는 2루타를 많이 쳐서 득점권 상황을 많이 만들고자 한다. 올해야말로 정말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멜버른(호주)=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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