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이제 나이를 먹고 하다 보니까 긴장감이 예전보다는 없죠."
담담한 마음가짐이 마운드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노경은이 한국 야구대표팀의 마운드 대참사 위기를 막았다. 1984년생, 41살 백전노장의 노련미가 빛을 발휘한 경기였다.
노경은은 9일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2026년 WBC' C조 조별리그 호주와 경기 2-0으로 앞선 2회말 갑작스럽게 구원 등판했다. 노경은은 2이닝 28구 1안타 1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틀어막으며 7대2 승리를 이끌었다.
호주 타자들이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팔색조 투구 내용이었다. 체인지업(8개) 직구(8개) 커터(4개) 커브(3개) 슬라이더(3개) 싱커(2개)를 다양하게 섞어 상대를 완벽히 요리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91.9마일(약 148㎞)까지 나왔다.
선발투수 손주영이 2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준비 투구를 하려다 팔꿈치 이상을 호소했기 때문. 류지현 한국 감독이 직접 마운드를 방문해 손주영의 몸 상태를 점검했고, 더는 투구가 어렵다고 판단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8강에 진출하려면 일단 마운드가 호주에 3점 이상 내줘서는 안 됐다. 호주에 3점을 내주는 순간 한국은 팀간 동률시 계산법에 따라 승패와 상관 없이 대회 탈락을 확정한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에 앞서 "등판이 불가한 투수 4명(고영표 류현진 곽빈 고우석) 외에는 다 준비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최소 실점해야 하는 상황이다. 1~2점 이내. 조금 더 앞쪽에 실점을 덜 하는 전략으로 조금 더 경쟁력 있는 투수들이 먼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운드 총력전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손주영이 1이닝 만에 강판하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다. 2회를 급하게 막아야 하는 상황을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적임자는 베테랑 노경은이었다.
노경은은 긴장하거나 흔들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2회말 선두타자 로비 글렌디닝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지만, 릭슨 윙그로브를 2루수 병살타로 돌려세우면서 호주의 흐름을 끊었다. 2사 후 제리드 데일은 3루수 땅볼.
3회말은 삼자범퇴로 더 깔끔하게 막았다. 노경은은 선두타자 팀 케널리를 2루수 땅볼로 처리한 뒤 2024년 미국 메이저리그 전체 1순위 지명 유망주 트래비스 바자나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어 커디스 미드까지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임무를 마쳤다.
노경은은 한국 야구의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시작점이었던 2013년 대회에 태극마크를 한번 달았고, 13년 만에 다시 국가를 대표해 WBC 무대를 밟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한 기량을 자랑하며 태극마크의 가치를 증명했다.
노경은은 대회 직전 이렇게 말했다.
"13년 전에 WBC에서 던진 것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고 와서 하다 보니까. 긴장감 이런 것은 예전보다 없어요. 긴장감은 없는데, 최대한 내 위치에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도쿄=김민경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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